[벤처포럼]벤처가 바라는 벤처정책

최종욱 마트애니 사장

최근 들어 정부가 벤처 지원에 나선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과 벤처 기업인들이 모임을 가졌으며 중소기업청에서 벤처 지원을 위한 자금을 조성했다는 소식도 나오고 있다. 일부 부처에서는 고용 촉진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벤처 밖에 해답이 없다면서 벤처 지원 정책을 세우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벤처 지원이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2000년 여름을 정점으로 벌어졌던 인터넷 거품과 뒤이은 수많은 벤처 기업인들의 구속, 그리고 최근 자주 등장하고 있는 5월의 IT업계 위기론으로 잘 알고 있다.

 99년과 2000년은 우리 역사에서 온 국가가 인터넷 거품에 파 묻혔던 광란의 해로 기억될 것이다. 정부가 앞장서고 언론이 부추기면서 끊어 오른 벤처 열풍은 온 나라를 뒤흔들었고, 그 와중에 무늬만 벤처인 엉터리 벤처와 벤처 투자자들이 설치더니 결국 2000년 후반부터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 시장은 아직 성숙하지 않았는데 벤처 수만 늘리다 보니 결국 과잉경쟁과 저가 경쟁에 의한 수익성 악화로 이어져 왔다.

 더구나 아무런 대책이나 분석도 없이 ‘국민의 정부’가 시작한 벤처를 살리겠다고 2001년 프라이머리CBO를 발행하게 된 것이다. 왜 이러한 지원을 해야 하는지, 어떤 기업에 지원을 해야 하는지, 그 결과가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런 분석이나 연구없이 진행된 탁상 행정의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문제는 오히려 이번 5월에 프라이머리CBO를 상환해야 하는 기업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시장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이다. 그렇지 않아도 저가 경쟁에 시달리면서도 꾸준히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넓혀온 기업들로서는 가장 두려운게 정부의 지원이다. 만약 정부가 벤처를 지원하겠다고 나서서 죽어가는 벤처를 살려놓으면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가는 벤처들도 같이 망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이는 특히 정부가 “이제 벤처에 직접 투자는 안 된다”고 생각해 “벤처 투자회사들에게 모두 맡기겠다”고 생각하는 경우다.

 벤처투자회사들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경우, 살아남아 1등을 하고 있는 기업보다는 겨우 목숨이 붙어 있는 벤처, 혹은 2등 벤처에 투자가 돌아갈 가능성이 많다. 자신감있는 1등 기업보다는 실력이 떨어지는 2등이나 꼴찌가 투자를 협상하기 좋은 대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의 벤처 투자들은 기술에 대한 변별력이 떨어져서 늘 기술에 대해서는 고만 고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쓰러져 가는 기업들이 투자를 받아 초저가 경쟁을 다시 하게 된다면 1등 기업은 죽을 수밖에 없다. 정부 지원으로 한계상황에 몰린 벤처들이 정부 지원을 받아 살아난다면 또 다시 그 지긋지긋한 초저가 경쟁을 시작해야 하고 이 경쟁에서 상당수 우량 기업들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술 또는 마케팅으로 승부를 겨루던 1등 기업 벤처들로선 정부의 벤처 지원이 정말 무서운 것이다. 이제 시장이 정리되고 남아 있는 기업들이나마 시장 경쟁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는데 정부가 나서서 돈을 퍼붓게 된다면 남아 있는 1등 기업들마저 죽게 될 것이다.

 간접 지원이든 직접 지원이든 중요한 것은 경쟁력 있는 벤처에 투자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국을 발판으로 세계라는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벤처를 만들어야 우리나라가 살 수 있다. 그런 경쟁력 있는 벤처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1등 기업을 찾아 투자를 하는 것만이 장래의 먹거리를 만드는 길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정부가 벤처업체들을 지원하려고 한다면 시장에서 1등 하는 기업, 적어도 국내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실력있는 기업을 골라서 지원해야 한다. 그것도 국내 시장이 아닌 해외 시장 개척용으로 해야 할 것이다.

 더 좋은 것은 그 지원이 지금처럼 여러 사람 먹여 살리기 위한 소액 다수 지원이 아닌 특별한 소수 벤처를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거액 소수 지원이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정부가 벤처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이 벤처 업계를 도와주는 길이라 생각한다.

 <최종욱 마크애니 사장 juchoi@markan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