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생각보다 심한 ‘원자재 몸살’

국내 16개 업종의 피혜액 눈덩이...

연초 시작된 국제 원자재난 파동으로 전자업계를 비롯한 국내 16개 업종의 피해액이 눈덩이처럼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관련 업체들이 생산비 절감과 해외 원자재 공급선 다변화에 나서는 등 비상이 걸렸다. 특히 우리나라 수출 주력 업종인 전자산업의 경우 건설업종 (9800억원)의 뒤를 이어 올 1분기에만 25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피해를 본 것으로 밝혀져 원자재난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상의가 16개 업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번 원자재 품귀현상이 일과성에 그치지 않고 내년 1분기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한다. 이럴 경우 전자업계 한 업종만 보더라도 예상 피해액이 2조8000억을 넘어설 것이라고 하니 국내산업 전반에 걸쳐 상상외의 타격을 주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이번 파동은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의 원자재 싹쓸이와 주요 선진국들의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 등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려서 나타난 국제적인 현상이다. 사실 이 같은 현상은 올해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미 작년 하반기부터 조짐을 보여 미리 대비책을 강구했더라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도 있었던 예고된 일이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사전에 충분한 대책을 세우지 않은 채 안일하게 대처하다 지난 2월 말에야 부랴부랴 서둘러 원자재 수급안정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을 놓친 대책이라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정책 감각으로 강력한 라이벌인 중국과 어떻게 싸움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대목이다. 이번에 원자바오 총리가 과열 양상을 띤 중국의 경기를 억제하는 정책을 펴야겠다는 시책을 발표한 것을 보더라도, 우리는 이 같은 중국의 움직임에 대해 까맣게 몰랐고 발표가 난 후에야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서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단적인 예일 것이다.

 원자재 파동을 막기 위해 정부가 관세 인하와 사재기 단속 등 대책을 세우고 수습에 나선 덕분에 파동이 다소 진정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이번 파동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국내업체들은 생산 활동에 상당한 차질을 빚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중국의 경기과열 억제 정책의 영향으로 당초 예상보다 조금 빠른 시일내에 원자재난이 풀릴 것으로 조심스레 낙관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역작용의 우려도 만만치 않다. 즉 이번 조치로 반도체를 제외한 전자·기계 등 7개 업종은 되레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견해다. 그 이유는 원자재 가격 상승은 곧바로 전자제품의 원가 상승으로 이어져, 이를 판매 가격에 반영하지 못할 경우 수출과 내수에서 이익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자재난은 제조 원가 상승으로 인한 가격 경쟁력의 약화를 불러 우리 경제를 받쳐주는 수출에 엄청난 타격을 줄 뿐만 아니라 국내 물가 등에도 악영향을 미쳐 국민의 생활을 어렵게 만든다. 원자재 파동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은 다소 진정이 됐다고 하지만 위안화 절상, 유가 급등 등 우리 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불투명하고 예측 불가능한 돌출변수는 곳곳에 널려 있다. 정부는 이번 파동을 교훈으로 삼아 해외원자재 공급선의 다양화와 관세율 추가 인하, 생산비 보조 등 다각적이고 근본적인 종합대책 수립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또한 원자재를 공급하는 업체들도 정부의 단속에 앞서 국가산업에 미치는 영향 고려해 근시안적인 이익에만 혈안이 돼 사재기와 공급 지연 등 이기적인 행동으로 기업들의 생산활동을 저해하는 일이 없도록 자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