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화되면서 산업 현장에서는 인재난을 겪는가 하면 정보기술(IT) 관련 학과의 졸업생들조차도 소위 ‘이태백’의 대열에 서는 취업난이 공존하고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른바 ‘맞춤형 인재’로 틈새 취업문을 두드려야만 살아남는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다. 과연 국민 1인당 소득 2만달러, 3만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서 우리에겐 어떤 인재가 필요하고 어떤 사회적 인재 운용 시스템이 마련돼야 하는가.
우수 인재란 창의성과 전문성을 가지고 조직의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난세에는 비전과 활력을 지닌 소수 정예의 우수 인재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마련이다. 보편 인재는 조직의 틀 내에서 주어진 역할 수행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조직을 밀고 나가는 저력을 만들어 낸다.
최근 일부 정당에서 국립대학교들을 통합해 사실상 서울대학교를 없애는 정책을 제안한 바 있다. 대학이 우수 인재보다는 보편 인재 양성에 힘써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세계 일류 기업들이 업종과 국적을 초월하여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전력하는 이때 우수 인재 양성을 포기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의 곳곳에는 순혈통주의가 배어 있다. 같은 피를 나눈 민족인데 너와 내가 그렇게 다를 수 있는가. 그래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땅을 사면 모를까, 가까운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하는지 모른다. 영재학교나 특수목적학교를 통해 좋은 인재를 선발해 놓고도 일반인과 같은 획일적인 평가의 잣대로 하향평준화하고 있다. 이 결과 우수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많은 인력들이 해외로 대거 유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수많은 보편 인재들은 IMF를 겪으면서 구조조정이라는 된서리를 맞았다. 이를 지켜본 어린 학생들이 보편 인재가 되기를 거부하고 이공계를 기피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 하겠다. 소수 정예의 인재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풍토 속에서도 실제 우리 사회의 많은 일들이 시스템이 아닌 인물 중심으로 결정되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엔지니어들을 보면 항상 느끼는 점이지만, 이들에게서 약삭빠름이라곤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답답할 정도로 메뉴얼을 중요시하고 모든 처리 결과를 도큐먼트로 남기는 우직함을 가지고 있다. 느린 듯하지만 오래 두고 보면 별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중간에 사람이 바뀌어도 일의 진행에 별 무리가 없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결국 보편 인재들이 만들어낸 단단한 시스템이 덩치 큰 미국을 버티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는 소수 정예의 인재를 만들어내는 일에 인색해왔고 보편 인재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합리적인 운용 시스템도 갖추지 못한 대책 없는 국가에 살고 있지 않나 염려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에 여러 곳에서 나오는 이공계 인력 양성 대안들을 보면 매우 고무적이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와 같이 과감한 보상을 통한 이공계 스타를 탄생시켜야 한다든지, 이공계 출신이 일정 비율 이상의 리더 자리에 배치돼야 한다는 목소리는 반가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또한 2008년까지 인천 송도 신도시에 유명사립학교가 설립된다고 한다. 부작용도 없진 않겠지만 외국 투자 유치를 확대하고 해외 유학 수요를 흡수해 결과적으로 교육의 글로벌 표준을 국내에 정착시키는 데 일조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사회에는 우수 인재와 보편 인재, 두 가지 유형의 인재가 모두 필요하다. 우수 인재와 보편 인재가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협조하면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성숙된 사회 질서가 필요한 시점이다. 높은 산맥 옆으로 깊은 바다가 있게 마련이다. 국가 발전의 속도에도 조절과 균형이 필요하다. 특히 도덕성과 따뜻한 인간성을 지닌 보편 인재의 양성이 소외돼서는 결코 안 되겠다.인재의 양성은 교육계만의 책임이 아니다. 다만 다른 인재를 알아보고 이들을 키우는 진정으로 우수한 인재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민병준 인천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 bjmin@inche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