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대기업의 한 계열사에서 용역을 받았다. 단말기 개발을 하는 우리 회사로서는 처음 받는 용역이어서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다. 작년 12월쯤 본격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는 너무나 촉박한 일정으로 우리는 마치 작전을 짜듯이 개발일정을 잡을 수 밖에 없었다.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천신만고 끝에 일정을 맞췄다. 그러나 정작 우리를 실망스럽게 만든 것은 개발완료 이후 집요하게 우리를 못 살게 구는 계약자였다. 개발완료 보고서를 작성한다는 이유로 우리에게 온갖 자료와 추가적인 일을 요구했다. 계약자는 마치 우리를 컨설팅 회사나 서비스 회사로 착각하고 있는 듯했다. 들어보니 누구한테나 다 요구하는 거란다. 어떤 일은 자기가 할 일도(개발 완료 후 자체 필드 테스트까지) 우리 인원을 차출하여 시험토록 요구하였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들이 사업하기가 힘들다는 얘기를 종종 들어왔다. 문제는 불공정 행위를 방관하는 정부의 제도가 아니라 당연한 관행으로 받아들이는 구성원의 사회적 인식이 문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계약을 했을 경우에 마치 아랫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것 같이 생각을 한다. 정작 목적물은 끝났음에도 온갖 사내의 관례를 이유로 중소기업의 노하우를 모두 징발해간다. 명령을 안 따르면 잔금으로 위협을 한다.
본래 일의 목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개발한 노하우까지 모든 것을 다 자료로 달라고 하니 나중에 업체를 변경해 우리가 준 자료를 갖고 만든다면 핵심을(생산용이 아닌 개발용 소스파일 등) 내준 우리는 무엇으로 기업을 존속 할 수 있겠는가. 납품일정 또한 제멋대로다. 급하게 서두른 일정 때문에 업체는 급행료를 지불했다가 돌연 납기를 늦추는 바람에 추가적인 금융비용과 재고를 떠안게 된다. 그러나 계약자는 제 날자에 시행했다고 자랑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웃소싱에 대한 인식도 잘못 돼있다. 아웃소싱은 왜 하는가. ‘내가 할 수 없기에 밖에서 구하는 것’이다. ‘나보다 잘 할 수 있기에 그 방면의 전문가에게 위탁하는 것’이 아웃소싱이 아닌가. 그런데 일의 방법에 대해, 과정에 꼬박꼬박 참견하고 중간에 계획에 없던 것을 요구하여 발목을 잡는다면 어떻게 일정을 맞추겠는가.
이런 관행으로는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이 살아갈 수가 없다. 과연 그들이 외국의 기업하고도 똑 같은 방법으로 일을 하는가 묻고 싶다.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잘못된 관행이 바뀌었으면 한다.
류은미 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