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콘텐츠를 보존하자](1)디지털콘텐츠가 소리없이 사라지고 있다

사진;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비평 웹진 `스키조`

‘매일 1500만 페이지씩 생성, 하지만 수명은 고작 70일’

 최근 연세대 문헌정보학과가 조사분석한 세계적인 인터넷 대국 대한민국의 인터넷콘텐츠 보존 실태다.

 처음부터 인터넷에서 태어나 인터넷에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디지털 콘텐츠들이 매년 급증하고 있다. 인터넷 대중화의 단초가 됐던 첫 상용 웹브라우저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가 나온지 이제 10년. 그동안 사라진 인터넷 콘텐츠를 복원하려는 노력들이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나아가서는 콘텐츠의 생성과 동시에 보존하려는 움직임도 엿보인다. 가치있는 콘텐츠·정보들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인터넷콘텐츠 보존 현황과 해결해야 할 과제 등을 앞으로 5회에 걸쳐 짚어본다.

 ◇콘텐츠는 매일 생성, 소멸한다=“우리는 확실한 소수 의견을 주장한다. 차라리 철학자들이 우글거리는 운동장에 떨어진 폭탄같은 존재이길 원한다.” 인터넷이 아직은 낯설던 지난 96년,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비평 웹진 ‘스키조’(SCHIZO)의 창간문 일부다. 이름처럼 ‘정신분열증적’이고 도발적인 선언문을 내세우며 한때 1일 히트수 10만을 기록할 정도로 마니아들이 추종했던 이 웹진은 아쉽게도 지금은 온오프라인 어디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휘발성이 강하고 역동적인 인터넷 매체의 특성상 오프라인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진화하는 모든 온라인 콘텐츠를 보존하기란 불가능한 데다 무의미한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인터넷 콘텐츠들이 생성과 함께 사장돼버린다면 이는 문제다. 최근에는 학술 보고서 등이 아예 인터넷으로만 발표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해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시급해졌다.

 ◇콘텐츠 보존은 ‘뒷전’=이처럼 디지털 정보의 영구 유실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졌지만 이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 방안 마련은 현재까지 미비한 실정이다. 우선 인터넷 공간의 상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인터넷의 근본적인 성격이 변화했다. 소위 ‘돈벌이’가 되는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가운데 정작 보존해야 할 정보들은 무관심 속에 사장되는 것이다.

 ‘스키조’ 창간을 이끌었던 손동수 씨는 “웹진들은 수익 구조의 한계도 한계지만 거대 포털이 등장하면서 존재 이유를 아예 상실하게 됐다”면서 “디지털 콘텐츠 복원 과정에서 인터넷 상용화 이전의 뉴스그룹, 통신 모임, 웹진, 진보 미디어 등을 돌아보면서 정보 공유 등 인터넷 초창기의 초심으로 돌아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나서야=오프라인 도서관이 대중의 정보 접근을 위한 최소한의 보루인 것처럼 인터넷의 가치있는 자료를 정리하고 보관하는 공간이나 체계의 마련은 매우 중요하다. 지난해 말부터 시민사회단체 주도로 시작된 ‘정보트러스트운동’과 지난 2002년부터 거론돼온 국립 디지털 도서관 설립 계획은 그래서 관심을 모은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정부가 ‘디지털 자료 납본법’ 개정 작업 등을 통해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관리를 서둘러야 한다는 점이다. 디지털 정보의 양이 방대하다보니 민간에 맡겨두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지난 95년 사회운동단체로는 처음으로 홈페이지를 개설해 정보통신 이슈를 공론화했던 ‘정보연대SING’의 오병일 씨는 “인터넷 콘텐츠·정보의 보관과 정리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며 “민간이 펼치는 정보트러스트 운동 등은 정책 마련을 유도하는 장치로서 기능한다”고 제언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