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T 2000으로 알려진 3세대 이동통신기술이 처음 기대했던 것과 같이 만개하지 못하고, 애초 의도했던 서비스 형태의 매우 제한적인 모습만을 2세대 이동통신기술의 기반 위에서 보여준 채 4세대 이동통신기술에 자리를 넘겨주어야 하는 운명에 처한 것 같다.
기술의 변화가 워낙 빠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받아들이고 넘어갈 수 있으나, 3세대 이동통신 사업허가를 획득하기 위한 경쟁과정에서 통신사업자들이 쏟아 부은 비용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통신사업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통신사업자 간에 사업권 획득을 위해 경쟁이 치열했던 2001년에 이미 예측되었다. 당시 회의적 시각을 견지하던 사람들의 주장은 합리적인 가격에 서비스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막대한 네트워크 구축비용으로 인해 거의 불가능 하다는 것이었다.
네트워크 장비가격이 기술발전에 따라 하락하는 추세이나 3세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성능을 갖춘 네트워크 투자비용은 지금도 여전히 통신사업자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결국 3세대 이동통신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3세대 이동통신기술이 꽃을 피우지 못한 것은 기술진보가 더뎌 장비가격이 좀더 빠르게 하락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소비자가 높은 가격을 자발적으로 지불할 정도로 매력적인 콘텐츠를 통신사업자들이 개발하지 못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이유가 당시 정부가 추진한 3세대 이동통신 정책에는 오류가 없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은 아니다. 즉 우리는 4세대 이동통신기술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3세대 이동통신과 관련한 정부정책의 문제점을 점검하여 앞으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그러면, 정부의 3세대 이동통신 정책에는 무슨 문제점이 있었는가.
첫째, 현재 이동통신서비스의 급속한 확산이 통신시장의 경쟁에서 기인했다는 경쟁만능주의에 사로잡혀, 3세대 서비스 제공을 위한 투자비용을 최소화하는데 실패했다. 통신네트워크 투자 및 운영비용은 사업자가 하나일때보다, 정확히 말하면 전국을 커버하는 망이 하나일 때 최소화된다. 그러나 3개의 통신사업자 컨소시엄에 사업권을 나누어주어 망의 중복이 발생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그만큼 투자비용은 증가하게 됐다. 또한 제한된 주파수 대역을 3개 사업자에게 나눠줘 제한된 주파수 자원의 효율적 활용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궁극적으로 투자비용 증가요인으로 작용했다.
우리나라와 같이 시장이 작은 나라에서는 독점사업권을 부여해 통신망구축 비용을 최소화하는 한편 소비자가격을 규제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 독점이 정 싫으면 과거 소주시장과 같이 독점사업권을 지역별로 할당하고 망의 상호접속을 통해 복수의 사업자들이 전국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옳다. 망 구축비용은 최소화하면서 서비스제공에 있어서는 경쟁을 도입하는 것이다.
둘째, 미래의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며 그러한 상상을 실현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과학자와 엔지니어다. 그러나 신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서비스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대안을 찾는 것은 경제 경영 전문가다. 아무리 좋은 기술도 시장성이 없으면 사장되기 마련이고 3세대 이동통신기술은 바로 좋은 예가 된다. 각고의 노력 끝에 개발된 기술이 제품화되고 시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과정에서부터 엔지니어와 경제경영 전문가 간의 협동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3세대 이동통신서비스의 도입과정을 돌아볼 때 외국을 무턱대고 따라가는 조급함만 있었지, 진지하게 어떻게 비용을 최소화하고 신시장을 개척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실행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점검을 통해 단순히 남들이 뛰기 때문에 덩달아 뛰는 오류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시장과 투자재원의 제한이란 태생적 한계를 가진 우리나라가 미래에 정보통신강국으로 세계에서 우뚝 설 수 없다는 것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권영선 한국정보통신대학교 IT경영학부 교수 yskwon@ic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