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용천 참사가 발생한 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사고 복구를 돕는 세계인의 온정이 이어지고, 이제 주민들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고속철도를 탄다면 서울에서 겨우 두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인 평안북도 용천에서 벌어진 끔찍한 참사를 처음 봤을 땐 한동안 무거운 돌덩이가 얹힌 듯 가슴이 답답했다.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이번 사고가 경제난으로 인해 부족한 산업기반시설로 생긴 인재(人災)였다는 점이다. 예고된 참사… 이 답답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북한의 경제난 해결과 산업 중흥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해법은 바로 남북 과학기술 교류 강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북한의 과학기술정보 전담기관인 ‘중앙과학기술통보사’와 협력해 ‘백두산의 자연’이라는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한 일이 있다. 미지의 세계인 백두산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DB화했다는 성과도 중요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남북이 힘을 합쳐 그동안 베일에 가려 있던 백두산의 자료를 전격 공개함으로써, 남북 과학교류의 첫 물꼬는 텄다는 점이다. 단순한 학술대회 교류 수준에서 끝났던 과거와는 달리 북한에 한발 더 다가서는 계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북한의 과학자들에게서 우리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북한 과학기술 인력들은 당국의 IT 집중 지원에 힘입어 상당한 실력을 지닌 엘리트 집단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만나는 당일 새벽까지 밤을 세워가며 결과물을 수정할 만큼 매우 열정적이었다. 한 마디로 하나를 요구하면 둘을 해 오는 사람들이었다. 정말 대단한 열정과 잠재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양질의 인력을 바탕으로 남북이 슬기롭게 협력한다면 얼마든지 세계 최고 수준의 IT산업 경쟁력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도 이제부터 좀 더 열린 자세로 이 분야에 대한 국제적인 마인드를 키워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KISTI는 북한에 꾸준히 IT 관련 도서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북한의 과학용어나 프로그램이 국제적인 호환성을 갖게 되고, KISTI라는 게이트웨이를 통해 남과 북의 공동연구가 가능해진다면 북한의 경제, 산업 수준은 예상외로 빠른 상승세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북한이 우위를 보이는 정보자료, 예를 들어 러시아의 첨단 항공·우주·군사기술에 관한 자료 등을 상호 공유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서방의 시각에만 익숙해져 있는 우리 과학기술계에도 획기적인 전환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백두산의 자연’ DB화로 남북의 과학기술 교류는 일단 물꼬를 텄지만 시급한 것은 네트워크 구축이라 생각된다. 북한에선 인터넷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으므로 우선 북한의 ‘중앙과학기술통보사’와 KISTI 간 1대1 데이터 교환 전산망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향후 여건에 따라 확장해 나가야 한다. 이후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망을 남북이 공유하고 초고속망을 통한 사이버상의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데까지 나아간다면 실질적인 협력을 통한 남북 과학기술 통일 시대를 먼저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중국에서 만난 남북 과학기술자들의 교류 열망이 생각보다 훨씬 대단했듯 충분한 성공 가능성이 있음을 확신한다.
남북의 과학기술 교류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어린 애가 뛸 수 없듯0l 조급해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지속적인 관심과 교류를 위한 노력의 끈을 정부와 국민 모두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번 놓친 끈을 다시 잡고 신뢰를 쌓으려면 처음보다 더 많은 노력과 힘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조영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원장 yhcho@kist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