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시민단체와 물가당국의 이동전화 요금인하 요구에 대해 사업자의 투자 재원 확보를 근거로 이를 반대해온 정통부의 정책 기조에 최근 변화가 감지됐다. 과거엔 정통부가 투자를 전제로 물가당국의 요금인하 요구를 저지하는 보호막 역할을 해줬으나, 최근 직접 요금인하 압력을 가하면서 투자를 유인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이는 하반기중 가시화할 전망이다. 이같은 변화는 올해 번호이동성제 시행으로 이동전화 사업자들이 과도한 마케팅 비용을 투입하는 반면 3세대(G) WCDMA 등 신규 사업부문에 대한 투자를 미루면서 두드러지고 있다.
◇요금인하 입장변화 감지=정통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정부가)투자를 유도할 방법도 마땅치 않고, 사업자도 투자 위한 논리를 만들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투자를 유인할 방법은 요금 규제에 손대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3000억원 규모의 코리아IT펀드 조성과 같이 요금인하와 투자를 연계해 풀어낸 사례가 있으나 정통부와 사업자간 암묵적 합의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이 지금과 다르다. 지금까지 요금인하 압력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왔다면 이젠 안에서 압력을 가하겠다는 변화가 일고 있는 것. 정통부는 공식적으로 진대제 장관이 지난 3월 밝힌 “투자재원 확보를 위해 인하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원칙을 유지하나 내부적으로 인하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머니속 요금 카드에 손을 댄 정통부=요금에 대한 정통부 입장이 변화한데는 1분기 이통사 실적에서 드러난 엄청난 마케팅 비용탓이 크다. 투자여력을 위해 무조건적인 요금인하는 안된다는 정통부의 논리가 설득력을 잃었다. 특히 SK텔레콤 합병인가조건을 심사하는 정보통신정책심의위의 결정을 앞두고 과도한 리베이트 등 문제 해결방안으로 영업비용 상한제 등이 거론됐으나 여의치 않으면 자연스럽게 요금인하가 거론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사업자들의 고민=사업자들도 1분기 드러난 엄청난 마케팅 비용에 스스로 자성한다. 이대로 가다간 공멸할 수 있다는 위험신호까지 감지했다. 3사 사장들이 ‘클린마케팅’에 합의한 것도 사실상 이런 상황에 대한 인식 때문이라는게 업계 안팎의 분석이다. 특히 막대한 마케팅비용 투입이 계속될 경우 투자기피라는 비난과 함께 여론의 요금인하 압력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마케팅비를 줄여 수익을 늘리면 요금인하 압력을 받게되는 딜레마에 빠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요금인하 요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꼬일대로 꼬인데다 정통부의 신뢰를 잃은 사업자간 합의를 이뤄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나 WCDMA 사업의 리스크 때문에 당장 투자할 분야를 결정하는 것도 난감한 일”이라고 말했다.
◇정통부, 정말 요금 인하할까=아직은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통부가 요금까지 들먹이는 데엔 통신사업자가 알아서 투자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섞여있다.
정통부는 마케팅 비용을 원가에 반영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공정경쟁과 클린마케팅을 유도해 생긴 여력이 투자로 자연스레 이어지기를 바란다.
정통부 한 관계자는 “서비스 업체의 투자로 시작하는 IT산업의 선순환 구조가 망가지는 것은 통신정책의 명분까지 잃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통신사업자들이 계속해서 투자에 미온적으로 나올 경우 요금이라는 극약 카드를 꺼낼 수 밖에 없다는 게 정통부 안팎의 상황인식이다.
<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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