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이 있다. 공짜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마는 최근 들어 공짜에 대한 소비자들의 바람은 더 커진 듯하다. 경로우대·장애인우대와 같은 ‘선의의 공짜’에서부터 각종 경품에 이르기까지 발품 파는 공짜가 도처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백화점·할인점들은 행사마다 공짜 사은품을 물뿌리듯 하고 있다. 고객을 잡기 위한 샘플상품은 당연히 공짜다. 영화도 공짜표(초대권)가 범람한다. 수십만원씩 하던 휴대폰도 불과 얼마전까지 공짜였다.
하지만 공짜의 함정은 곳곳에 숨어있다. 공짜라는 허울만 썼을 뿐 실제는 공짜가 아닌 것이 대부분이다. 수십만원짜리 휴대폰을 공짜로 주는 것은 ‘프리 마케팅’ 기법으로 결국에는 제값을 주고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계약기간 이전에 휴대폰 사용계약을 해지하면 오히려 불이익을 당한다. 유통점의 사은품도 결국 매출을 올리기 위한 유인책이다. 샘플상품 역시 고객을 잡기 위한 ‘미끼’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공짜에 열광한다. 뒷생각은 크게 하지 않는다.
‘공짜 선호증’의 백미는 인터넷이다. ‘공유의 정신’ ‘free(공짜)’라는 말이 인터넷의 대명사처럼 쓰이면서 네티즌들은 인터넷의 공짜를 너무 당연시 받아들였다. 불과 몇년전 까지 돈 주고 사서 듣던 음악을 언젠가부터 공짜로 듣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CD플레이어에서 MP3로 매체만 바뀌었음에도 음악은 졸지에 유료에서 무료로 돌변했다.
인터넷의 발전은 수천년 돈 주고 듣던 음악의 패턴을 하루아침에 바꿔 버렸다. 물론 여기에는 무료 음악을 배포한 업체들의 책임이 더 크다. 본류의 상품을 배제하고 지류를 쫓았던 맹목이 잘못이었다면 잘못이다.
그러나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 공짜에는 그 만큼의 대가가 뒤따른다. 공짜 음악은 궁극적으로 창작자의 창작의욕을 꺾고 산업의 발전을 저해시킨다. 창작없는 음악은 질적 빈곤을 가져오고, 들을 것 없는 음악에 소비자는 외면한다. 악순환이 계속되면 결국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온다.
‘예술은 배고파야 한다’라는 말은 상대의 입장에서 하기 좋은 ‘아전인수’격의 얘기다. 공짜, 그 다음은 공멸이다.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놓여 있다.’ 러시아 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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