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포럼]다시 프로그램을 만들자

 최근 정부 예산정책 관련부처의 고위관계자와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앞으로 정부가 중소·벤처기업에 직접 자금을 지원하는 과거의 정책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기업을 지탱하는 것이 크게 돈과 사람이라고 봤을 때 중소·벤처도 기업이기 때문에 기술개발은 과정과 수단일 뿐 결국 단계별로 자금이 수혈돼야 양산도 하고 이익실현이 가능함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정부 관계자의 시각에 그동안 은행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또는 카드사 부실 문제 해결에 총체적 지원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됐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작금의 중소·벤처기업의 참상을 정부가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벤처 붐이 시작된 최근 5년간 벤처 관련 지원예산 누계를 일개 카드사 지원금액과 비교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정부 입장은 카드사 문제가 금융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는 하지만 벤처 지원 역시 미래 한국을 먹여 살릴 성장 동력을 키우는 국가적 투자정책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해보니까 안되니 그만하겠다는 발상은 옳지 않다. 지금의 재벌들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들만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정경유착이라는 비난을 감수해 가면서까지 정부의 지속적이며 집중적인 금융지원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왜 정부에 역할분담을 요청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김대중 정부 시절 정부의 필요 때문에 제시했던 적극적인 벤처 유인책을 들 수 있다. 지금 많은 수의 중소·벤처인들은 그 시절 십수년간의 기술개발 경험을 자산으로 인생을 걸고 창업한 사람이다. 그들 중 일부는 쓰러지고 일부는 살아남아 기술개발을 마치고 양산과 마케팅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과는 달리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은 그들에게 문턱이 너무 높다. 다시 말해 정부가 중소·벤처기업에게 자생력을 요구하기 전에 직접금융 조달 인프라를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선별적인 지원과 단계적인 육성을 위해 민간에만 맡기지 말고 중소기업청 등에 실패 경험 있는 전직 벤처인을 영입하고 선진국에서 벤처투자 실적이 많은 금융인을 정부 내 민간 전문가로 채용하는 한편 지난 실패를 거울삼아 새로운 벤처 정책을 입안해 시행하라고 권하고 싶다.

 정부가 중소·벤처기업에 얼마나 많은 예산을 지원하느냐 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벤처 정책을 이끌어 가고자 하느냐가 이 시점에서 더욱 요구된다. 지금 정부 경제정책은 몇몇 재벌 기업에만 의존해서 손쉽게 목표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그것은 시장에서 일부 기업의 인력과 자원의 싹쓸이와 한국 경제를 담보로 맡기는 왜곡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중소·벤처 육성의 의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공계 인력이 부족한 지금 그들이 가진 기술력과 실패경험은 그대로 고스란히 국가적 자산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들은 위험하고도 선도적인 기술개발에 몰두함으로써 그 기술이 실패하든 성공하든 다음 세대 기술 개발에 공헌하게 된다. 여기서 양성된 인력을 종종 대기업이 데려가서 벤처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풍부한 자원을 통해 사업화에 이르게 된 예가 많다. 따라서 정부 못지 않게 대기업도 역할 분담에 책임을 느낄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들이 매달 벌고 있는 순익이 지속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혹자는 중소·벤처들이 기대기만 해서 자생력이 없어질 것이라고 걱정할지 모른다. 그러나 정부의 무관심과 은행의 고질적인 담보관행, 대기업의 인력 스카우트 및 원가 인하 전가에도 불구하고 집단적 의사 표시 한번 없이 꿋꿋이 견디고 있는 것이 지금의 한국 중소기업임을 직시해야 한다.

 이제 상생의 경제를 위해 중소·벤처 육성을 위한 새로운 실행 프로그램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던 아니던 작금의 경제 상황에 맞는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 정부 예산부처, 중기청, 은행, 대기업 관계자 그리고 벤처인이 다시 모여야 한다. 우리가 여기서 접는 것은 지금까지의 국가적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을 위해 벤처인의 열정을 다시 기대한다.

<김양국 아이컴포넌트 사장 ykim@i-component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