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기업천하지대본

‘태종우(太宗雨)’

 조선 초기 계속되는 극심한 가뭄을 이기기 위해 태종이 혼신을 다해 기우제를 지낸 후 탈진해 쓰러지자 내렸다는 비가 바로 ‘태종우’다.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하늘에 비를 기원하는 조선 태종(유동근 역)의 처절한 연기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만인지상의 임금이 이렇게 자기를 버려가며 비를 바라는 것은 왕이 농경에 의존하는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할 의무를 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과거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는 것이 농업이었다면 오늘날에는 기업이 일상 경제 생활의 기초라 할 것이다. 그런데 옛날 ‘농자천하지대본’을 말하듯 오늘날 ‘기업천하지대본’을 말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최근 중국 다롄에 공장을 세운 한 반도체 업체 사장은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기업 지원과 유치에 적극적인 중국 관료들의 모습을 말하며 한국의 기업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중국 다롄시 정부는 이 회사의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몇번 씩이나 한국을 찾는가 하면 공장 건설비와 기숙사·운동장 등 각종 시설의 건축 비용도 거의 부담하는 파격적 조건을 제시했다. 이 업체는 대지 임대료만 내면 그만이었다. 공장 준공식에는 부시장 등 지방 정부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향후 계속적인 투자를 신신 당부했다. 또 중국에 수입되는 부품에 붙는 관세율을 낮추기 위해 관련 공무원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외국 명문 대학에서 공부한 우수 인재들이 지방 정부에서 외국 기업 유치 실무를 하며 혼신을 다해 지원하는 모습이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는 한국 기업인도 있다.

 중국 관료들은 ‘기업천하지대본’임을 분명히 알고 이를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인들 사이에서 한국 관료들에 대한 좋은 말은 별로 나오지 않는다. 한국 기업을 위해 ‘태종우’를 빌어 줄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디지털산업부·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