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전화 시장이 KT 독점 체제에서 경쟁체제로 전환된 지 5년이 지났다. 지난 1999년 4월 하나로통신이 시내전화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경쟁시대에 들어섰다. 하나로통신은 초기부터 디지털 광가입자망(FTTC/FTTO)을 통한 고품질 음성전화와 유선통화 연결음(V-Ring) 등 각종 첨단부가서비스 제공으로 유선전화시장의 서비스 및 망고도화 경쟁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올 4월말 현재 시내전화 시장은 KT의 시장점유율이 95.3%로 여전히 독점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후발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20%까지 이르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경쟁체제의 성공여부는 정부 정책에 달려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은 후발사업자가 선발사업자인 BT의 시내망을 이용하지 않고 독자적인 통신망 구축을 통해 시내전화 시장에 진입하도록 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후발사업자들의 시내전화 시장점유율은 현재 22.4%(2003년 6월말)에 이르고 있다. 미국은 1996년 통신법 개정 이후 선발사업자인 RBOC(Regional Bell Operating Company)의 시내망을 후발사업자에게 개방하여 시내전화 경쟁에 불을 붙였다. ‘UNE(unbundling network element)’라 부르는 이 제도는 기존 사업자의 시내망을 요소별로 세분화하고, 후발사업자가 이를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 시내전화시장에서 후발사업자의 시장 점유율은 14.7%(2003년 6월)에 이르며, 이중 ‘UNE’를 이용한 사업자의 비중은 60%를 넘어서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01년 시내전화 사전선택제를 도입해 장기간 지속되던 NTT의 독점체제를 종결시켰다. 시내전화 사전선택제란 전화선은 그대로 사용한 상태에서 통화 서비스만 원하는 사업자를 선택하여 이용하는 제도를 말하는데, 후발사업자는 이 제도를 통해 시장점유율을 22.3%(2003년말 현재)까지 끌어올렸다.
이처럼 시내전화 경쟁체제 도입에 성공한 국가들은 선발사업자와 후발사업자간 구조적 경쟁력 차이를 줄이기 위해 비대칭 규제를 도입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선발 사업자에게만 사전 선택제 의무를 부과한다든지, 후발사업자의 투자비 회수를 돕기 위해 접속료 산정방식을 달리한다던지 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제 우리도 시내전화 시장의 경쟁 활성화를 위해 기존의 비대칭 규제정책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 후발사업자에게 제도적 특혜를 부여해 경쟁력을 제고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기존사업자와 실질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우선, 후발사업자의 투자비 회수와 왜곡된 원가구조 개선을 위해 시내전화 사업자간 상호접속료 무정산이 필요하다. 그동안 번호 이동성 시행 지연에 따라 하나로통신과 KT간 착발신 통화 비율의 심한 불균형이 발생하였는데, 이는 KT에 대한 하나로통신의 상호접속료 수지의 만성적 적자를 초래하였다.
다음으로 후발사업자의 수익구조 개선을 위해 시외전화 사전선택제 의무를 면제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EU 국가와 일본에서는 초기 투자비 부담을 고려해 후발사업자에게 시외전화 사전선택제 의무를 면제하고 있다. 또한, 최근 이슈화되고 있는 결합상품 규제와 관련하여 기존의 지배적 사업자 규제 원칙을 고수할 필요가 있다. 비록 법률 개정에 따라 규제의 시점이 사전적 시점에서 사후적 시점으로 바꿨으나, 실제 운영에 있어 지배적 사업자에 대해 엄격하게 적용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내전화시장의 제3사업자 참여는 당분간 유보하는 것이 경쟁의 실효성 측면에서 타당하다. 현재와 같은 KT 독점상황에서 제3사업자의 신규 참여는 망 고도화 및 서비스 품질경쟁을 촉진하기 보다는 후발사업자간 과당경쟁에 따른 동반 부실화를 초래할 것이다.
하나로통신은 지난 5년간 시내전화 사업에 약 9000억원을 투자했다. 제3사업자가 참여하게 되면 기존 투자 자금의 회수가 불가능해져, 첨단망 구축 등 재투자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시내전화 경쟁정책은 사업자 양산을 지양하고 기존 사업자간 경쟁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후 제2사업자가 경쟁력을 확보한 후 신규사업자 진입을 검토해야 한다.
◆윤창번 하나로통신 사장 cbyoon@hana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