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 개최된 베를린 마라톤대회에서 케냐의 마라토너 ‘폴 터갓’은 종전의 세계 신기록을 무려 43초나 앞당긴 2시간 4분 55초라는 경이로운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100m를 평균 17.06초로 달린 것으로 인간으로서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던 마의 2시간 5분 벽을 깨트린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폴 터갓은 경기 후, 대기록 달성의 비결로 동료와의 스피드 경쟁을 들었고, 1초 차이로 2위를 한 페이스메이커 세미 코리르 또한 마의 벽을 깬 한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얼마 전 터갓은 이번 아테네 올림픽에서의 최대 라이벌로 우리나라의 이봉주 선수를 꼽기도 했으니, 두 선수가 서로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더욱 좋은 기록이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이처럼 경쟁은 참여자 스스로가 긴장감을 유지해 최대의 성과를 거두게 함으로써 모두를 윈윈하게 만들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기업 경영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을 유발해 해당 기업은 물론 산업의 발전을 가능케 한 사례가 많다. 코카콜라와 펩시, GM과 포드, 노키아와 삼성전자, 나이키와 리복의 사례처럼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최고의 라이벌과의 건전한 경쟁을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해 왔다.
국내 IT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9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의 초고속 인터넷 산업은 치열한 서비스 경쟁을 통해 눈부시게 발전해 100명당 보급률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국내 기업인 KT가 AOL, NTT 등 세계 유수의 통신기업들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초고속인터넷 사업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내 이동통신 분야가 가입자 3500만, 보급률 70%를 상회하는 폭발적 성장을 이뤄낸 것도 90년대 중반 이후 도입된 경쟁시장에서 참여자들의 치열한 경쟁에 힘입은 결과다.
‘기업이 경쟁하면 고객은 즐겁다’는 말처럼 경쟁의 활성화는 서비스 질 향상과 가격인하 등 고객 혜택 증가로 이어지고 동시에 해당 산업과 연관산업의 동반 발전으로 이어진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이동통신요금은 92년을 ‘100’으로 봤을 때 2000년 ‘48’ 수준으로 지속적으로 인하돼 왔고, 올해 들어 번호이동성 도입을 통해 서비스 경쟁이 더욱 활성화돼 다시 10% 이상의 요금인하 효과가 실현됐다. 또한 이러한 서비스 산업의 활성화를 통해 내수기반이 확대되면서 단말기 등 관련 제조업의 비약적인 성장이 이뤄져 세계 10대 단말기 제조회사에 국내기업 3개사가 포함됐고, 상당수의 벤처기업들도 통신산업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이처럼 이동통신 서비스시장의 경쟁은 서비스업과 제조업 간, 성장과 투자 간, 대기업과 벤처기업 간 성장의 선순환 고리를 형성해 산업과 국가경제의 균형발전을 촉진하는 시발점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국가산업발전에 큰 몫을 감당해 온 이동통신 시장은 최근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 듯했으나, 초고속 무선데이터 서비스, 디지털 컨버전스의 가시화 등에 따라 제 2의 성장기를 맞이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성장이 양적인 것이었다면 앞으로의 성장은 고객의 생활과 편익에 초점이 맞춰진 유비쿼터스 서비스를 추구하는 질적 성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동통신 산업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성장의 궤적을 그려나가는 것은 성장의 기폭제가 돼 온 경쟁을 정부와 기업이 어떻게 발전적으로 이끌어 가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는 공정한 경쟁의 틀을 만들어 주고, 사업자들은 그러한 틀 속에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경쟁, 고객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본원적 경쟁을 지속해 나간다면 이동통신 산업, 나아가 IT분야는 다시 한 번 도약해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이끄는 견인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 적을 물리쳐야 하는 전쟁은 과정이 아무리 공정해도 아름다울 수 없다. 그러나 건전하고 공정한 경쟁, 상대방을 인정하고 격려하며, 서로를 성장시키는 상생의 경쟁은 참여자와 관계자 모두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아름다운 것이다. 통신시장은 물론 전체 IT분야에서 아름답고 효과적인 경쟁을 더 많이, 지속적으로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남중수 KTF 사장 jsnam@ktf.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