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청와대 ‘국정과제회의’에서 국가발전전략을 혁신주도형으로 전환하기 위해 과학기술부가 국가 연구개발(R&D)체계의 핵심역할을 수행하도록 하고 과기부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격상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가혁신체계(NIS)구축방안이 결정됐다.
그동안 개별부처가 편성했던 국가 R&D예산을 과학기술부가 1999년 출범한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통해 종합조정 및 기획평가하겠다는 것이다. 국과위의 위원장은 대통령인데 과학기술부 장관은 부총리로 승격해 국과위의 부위원장을 겸임, 실질적으로 과기부가 NIS를 주도해 나가도록 하자는 것이다.
작년 참여정부 출범 시 정보과학기술보좌관 제도를 신설해 국가 최고정책결정권자의 국가 R&D에 대한 조정능력을 강화한 바 있다. 그러나 그동안의 성과는 직접적으로 정책으로 나타나기보다는 현재와 같은 제도적 조정으로 현실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국가적인 과제로서 만시지탄을 금할 수 없는 사안이다. 선진국들의 예를 보면 이미 과학기술정책 관련 정부부처가 통합돼 부처 내에서 자동적으로 정책의 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독일은 10년 전인 1994년 교육·과학부와 기술·연구부를 통합해 ‘미래부’라 불리는 ‘교육·과학·기술 연구부’를 설치해 정책 간 중복 및 연계부족의 문제를 해소하는 노력을 해오고 있다.
프랑스는 산업과 중소기업을 관장하는 부처가 R&D업무까지 담당하는 산업중소기업연구부(Ministry of Industry, SME’s and Research)로 통합돼 있다. 다른 선진국들도 유사한 통합과정을 거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관련 부처가 과학기술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건설교통부, 농림부, 해양수산부, 환경부 등 9부 2청에 이르고 있으며 각 부처가 사실상 경쟁적으로 정책을 시행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성장동력산업육성, 지역혁신, 창업촉진, 인력양성 등 겹치지 않는 분야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심하게 말하면 산업별로 장관이 하나씩 있는 셈이다.
이제 경쟁은 나라 안에서가 아니라 지구촌에서 이뤄진다. 국가 운명의 사활을 걸고 경쟁력을 강화해도 100년 후의 국가적 생존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과언일까.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5대 강국은 우리의 독립자존을 담보하지 못한다. 우리의 미래는 작지만 강한 기술강국으로 승부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은 제약돼 있다. 천연자원만 부족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과학기술개발에 투입할 수 있는 예산도 우리 국력의 한계에 의해 제약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R&D 및 기술사업화 정책의 효율성 제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일정한 예산을 3개 부처가 똑같이 나눠 쓰면 성과는 각기 1/3씩 되는 것이 아니다. 중복과 경제규모의 미달로 훨씬 적어지는 것이다.
사실 10여년 전부터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의 통합에 대한 논의는 진행돼 왔으며 심지어는 교육부까지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교육, 과학, 기술, 연구를 통합한 독일의 미래부의 예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벤치마킹을 한다면 제일 좋은 것을 따르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환경이 그와 매우 다르다면 합리적으로 판단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다단계로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방향이 옳더라도 질질 끌다보면 죽도 밥도 아닌 꼴이 될 수 있다는 인간세상의 경험은 우려를 낳게 한다.
이번의 청와대 결정은 방향은 옳으나 현실적인 상황을 감안한 임시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과학기술부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장관이 격상되는 것은 좋으나 집행기능을 한 순간에 놓아버리면 명분은 취하되 실리를 잃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현재의 체제로 본다면 이 또한 기우는 아닐지 모른다.
그런데 장차 NIS의 구축을 위해서라면 과학기술부는 과학·기술인력 교육 및 양성, R&D, 사업화 등 국가 R&D 전분야의 통합조정 및 기획평가의 능력을 강화하고 체계화해 향후 분산된 집행기능의 통합을 준비하는 데 주력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신진 한국기술거래사회 회장 Korjin@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