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러플린 총장을 선출하면서 국민적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고3 수험생을 둔 학부모의 문의가 이어지고 서울대 공대나 의대를 지원하려던 일반고 및 과학고 영재들이 KAIST로 눈길을 보내며 진로에 대해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KAIST 내부에서도 변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다. 세계화로 가기 위한 영어교육 시스템부터 손을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이곳저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문서 처리도 모두 글로벌을 지향하는 영문으로 고칠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총장 업무보고도 영어로 해야 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래서 영어에 자신이 없는 일부 직원들의 한숨 섞인 걱정도 나오고 있다.
KAIST 관계자는 “이제는 굳이 외국 나가서 KAIST가 이런저런 세계적인 연구를 하고 있는 한국의 으뜸 이공계 대학이라는 자질구레한 설명이 필요없게 됐다”며 “입시 홍보조차 할 필요 없을 것”이라고 아주 내놓고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러플린이 국민 영웅으로 부상하던 ‘히딩크’처럼 과학기술 대중화의 전도사로서 제 몫을 과연 할 수 있을 것인가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다만 그가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세계적 석학이다 보니 그만큼은 한국 과학기술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만연해 있을 뿐이다.
KAIST는 냉정해야 한다. 특히 이공계 기피현상 해결과 국민소득 2만달러 실현을 위해 정부나 국민이 한 목소리로 이공계를 키우려는 의지가 러플린 총장 선택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KAIST가 잘하고 있어서 그를 총장으로 보낸 것이 결코 아니다.
KAIST가 한국의 이공계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그 ‘될성 부른 싹수’에 미국 총장들의 연봉인 수십만∼100만달러를 들여 도박 아닌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좀 이른 얘기긴 하지만 만일 ‘러플린 효과’가 나타난다면 KAIST는 그의 스탠퍼드대 복귀 이후엔 어떻게 ‘히딩크’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까지도 해야 한다.
<경제과학부=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