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특수효과로 명성을 날리던 슈퍼컴퓨터 제조업체 실리콘그래픽스(SGI)가 기업시장을 겨냥한 변신으로 재기를 노리고 있다. SGI라고 불리는 이 회사는 지난 90년대 슈퍼 컴퓨터 기술을 터미네이터 2, 쥬라기 공원 등 공상과학영화의 눈부신 특수효과에 적용하면서 종업원 1만1000명이 일하는 하이테크계의 우상으로 부상했었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공룡 티라노사우루스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디자인하던 호시절은 마치 공룡이 멸종된 것처럼 사라졌다. 쥬라기 공원의 작고 민첩한 공룡 벨로시렙터가 자신보다 훨씬 더 큰 먹이를 물어뜯는 것처럼 저렴하지만 강력한 PC와 애플의 매킨토시 컴퓨터들이 SGI의 비싼 그래픽 워크 스테이션 시장을 앗아갔다.
현재 SGI는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고 직원수는 3100명으로 줄었다. 이 회사의 슈퍼컴퓨터는 이제 화려한 영화 그래픽이 아니라 커피캔 같은 제품을 디자인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프록터 앤 갬블은 SGI의 최신 ‘알틱스 3000 리눅스’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커피향을 더 오래 보존하는 커피캔, 새지 않는 기저귀 같은 소비자 제품을 만들고 있다. 프록터 앤 갬블은 커피향을 오래 보존하고 오프너 없이 잡아 당기면 열리는 플라스틱 용기를 디자인하는 데 마이크로프로세서 64개가 장착된 SGI의 슈퍼컴퓨터가 동원됐다. SGI는 슈퍼컴퓨터라는 고성능 연산 영역에서 이제 저가 저성능 시장으로 하향 이동하고 사업의 중심축을 픽셀 처리에서 커피캔 디자인과 같은 과학적 엔지니어링 컴퓨터 문제로 옮겼다. SGI는 반면 특수효과 모델링 소프트웨어, 칩 설계용 슈퍼컴퓨터인 MIPS 테크놀로지스와 크레이를 매각했다.
4년 전 SGI 사령탑에 오른 밥 비숍 CEO는 “SGI의 재무적 생존력이 어느 때보다 탄탄하다”면서 SGI는 바로 흑자 전환 진입점에 들어섰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SGI는 스스로를 120억달러에 달하는 연구용 컴퓨팅 시장에서 성장 여력이 충분한 거대 기업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SGI가 델, IBM, HP와 같은 기업들이 제조 판매하는 저가 컴퓨터의 끝없는 공세를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SGI의 에스테스 부사장은 “SGI는 기업시장에서 성장 기회가 많다고 믿는다”고 자신했다.
<제이 안 기자 jayahn@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