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인터넷 메신저가 사적 대화의 도구를 넘어 공적인 대화의 도구로 자리잡으면서 사내 다양한 메신저를 통일키로 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각 메신저 사용자들끼리 갑론을박하며 자신이 사용하는 메신저로 통일하자며 투표까지 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사이 메신저는 이미 거대 다국적 SW기업의 특정 제품으로 천하통일이 돼버렸다. 그 기능 또한 막강해 직장인들의 새로운 대화 창구로 각광받고 있다.
이에 대해 국내의 한 회사가 100억원의 손해 배상을 청구한 상태지만 결과가 어떨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문제는 최근 국내 채팅 사이트에서 개인간 채팅을 훔쳐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판매했다가 문제가 된 적이 있듯, 메신저도 기술을 장악하고 있는 쪽에서 투자할 경제성이나 목적성만 확보되면 기술적으로 통신내용의 열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국가적 이해관계나 특정 기업의 이익을 위해 지구촌 곳곳에서 진행되는 메신저간 통신내용을 얼마든지 감시, 이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특히 지금은 무료지만 원한다면 느닷없이 유료로 전환하고, 사용료도 맘대로 올렸다 내렸다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다.
휴대폰 쪽은 더 심하다.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국내 휴대폰 제조회사들의 CDMA칩 수요 물량은 이를 독점하고 있는 퀄컴의 손아귀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한다. 사고 싶어도 그 회사가 안 주면 속수무책이다. 더구나 새로운 모듈이 추가되면 기존 계약서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로열티를 추가로 부과하기 때문에 중소 제조사들의 이중고는 말이 아니다. 한마디로 우리 기업들은 재주 넘는 곰에 불과한 것이다.
특히 그들은 통상문제라는 카드를 통해 국내 업체들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최근 국내 무선 인터넷 플랫폼 표준화에서 이 회사의 플랫폼이 유리한 지위를 얻도록 하기 위해 ‘통상 마찰’을 무기로 우리 정부에 압박을 가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다. 유럽연합(EU)이 MS사에 대해 반독점법 위반, 불공정 경쟁을 들어 제재를 가하자 미 의회의 의원들이 EU 관련 인사들에게 ‘무역전쟁’을 언급하는 압박성 서신을 일제히 보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차세대 수종산업이라는 IT산업의 ‘쌀’로 비유되는 국내 SW산업의 현주소를 보자. 역시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고 두 발로 서기 위해서는 아직도 외부로부터의 버팀목이 절실한 실정이다.
더구나 SW는 그 나라의 문화가 투영된 고도의 지적 산업으로 ‘문화’의 파급을 동반하는 플러스 알파의 효과뿐만 아니라 퀄컴의 예에서 보듯이 국가적 산업 발전을 위한 핵심 동력으로서 양보할 수 없는 방어 거점이다. 자유 무역의 원칙만 들어 특정 국가, 특정 기업의 독점을 방관하거나 국내 산업의 고사를 방치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란 미국 영화가 있다. 2차대전 때 전투에 참가한 라이언가의 사형제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라이언 일병’의 무사 귀향을 위해 미 행정부가 작전을 전개, 라이언 일병을 구해 낸다는 전쟁 영화다. 자국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팔을 걷고 나설 때마다 그 영화가 생각난다.
웹서비스가 SW산업의 테마로 떠오르자 내로라하는 다국적 거대 SW기업들이 한국 시장 공략에 대대적으로 나선다는 뉴스를 접하고 있다.
시장이 활성화되기만을 기다리며 몇 년째 어렵게 버텨온 토종 SW전문 기업들은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밀러 대위처럼 한국 SW산업을 살리기 위해 ‘태극기 휘날리는 장동건’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다.
◆황영민 K4M 공동대표 ymhwang@k4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