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말 경제 위기 이후에 등장한 ‘이공계 기피 현상’이란 말은 이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듣는 보통 명사가 되어 버렸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이공계 기피현상을 우리가 마냥 지켜만 본다면 10년, 20년 뒤 우리의 희망은 찾아 볼 수 없다.
실제 대학 응시생의 자연계 지원율이 외환 위기(IMF) 이전 96년도에 42.6%에서 2002년도엔 26.9%으로 급락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고 그 추세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제일 우수한 이공계 자원이 모인다는 서울 공대의 일부 학과 미달 사태라든지, 과학고 출신 학생들이 의대나 한의대로 몰려가는 현실은 그 심각성을 잘 말해 준다. 또 상위 그룹에 있는 명문 대학 이공계에 다니는 대학생 중 30% 이상이 각종 고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얼마 전 언론 보도는 거의 충격에 가깝다.
우리가 이공계를 중시하는 정책을 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나라는 천연자원이 빈약하고 지정학적으로 강국에 둘려 쌓여 역사적으로 외세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운명체다. 우리는 국력을 보다 강하게 키워야 떳떳하게 생존할 수 있고, 그 바탕으로 세계 1등 기술을 통해 경제력을 높여 1만달러에 머물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뛰어넘어 2만달러 시대로 서둘러 가야 한다. 그 중심에 이공계가 있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과 아이디어도 그것을 실행할 기술 자원이 없으면 의미없는 일이 된다.
혹자는 지금 이공계 인력을 양적으로 줄이고 그간 우리 사회가 무작정 이공계 우대 정책만을 써서 이것이 오히려 생존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전혀 틀린 얘기는 아닌 듯 하다. 그간 산업사회 패러다임으로 양적으로만 늘리는 정책은 재고하는 것이 옳다.
이제 지식 정보 사회에서는 보다 확실한 기술을 양성해 낼 수 있는 뛰어난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 양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질적인 문제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이공계 기피 문제는 보다 우수한 자원이 다른 분야로 이동하고 상대적으로 열세한 자원이 양적만으로 팽창하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공계 기피의 근간이 되는 엔지니어의 빈약한 대우의 이면에는 너무도 취약한 원천 기술의 열세가 자리잡고 있다. 절대적으로 완전한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한 우리의 현실이 기술인을 낮게 평가하고, 지금까지 손쉽게 장비나 소재·부품을 들여다 대량으로 만들어 수익을 올리는 방식의 산업 구조는 이미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왔다. 다행히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우위를 보이고 있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 단말기, 온라인 게임 분야는 우리가 어떻게 기술을 키워 보다 잘사는 나라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 주는 희망적인 사례다.
정부와 일부 기업에서는 이런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 다양한 ‘이공계 출신 기 살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저자가 근무하는 파워컴도 ‘오 이공 코리아’ 이벤트를 시작했다. 사실 일개 기업이 이런 일을 하기에는 상당히 무모한 발상일지 모른다.
그러나 큰 역사적 사건도 아주 작은 일에서 시작되었 듯 이공계의 분위기를 북돋는 일에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려는 이런 작은 시도가 모여 결국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 2년전 월드컵의 뜨거운 함성으로 하나가 되었던 그 벅찬 감동을 다시 6월을 맞아 우리 민족의 뜨거운 열정과 하나된 힘, 무서운 잠재력을 끌어내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얼마 전 서울대 이면우 교수는 한 월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잭 웰치의 얘기를 통해 이공계의 위기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는 각오로 달라 붙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정책 구호나 유인책 몇 가지로 해결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 못하면 죽겠다는 각오로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사태의 심각성을 호소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망국적 부동산 투기 문제처럼, 이공계 기피 현상도 모두가 나서 함께 고민해야만 하는 국가적 위기다.
<김종우 파워컴 사장 jw@icba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