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이후 최근 수년 동안 통일에 대비한 IT분야 남북 학술모임을 꾸준히 가져왔다. 그러나 서로 다른 IT표준 개념을 가지고 모임에 임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IT 용어표준 등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지만 노력에 비해 결과가 미미하다는 지적도 있다.
남북 IT학술 모임은 “남한이 일방적으로 도와준다”든지 혹은 “남한이 일체 경비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모이게 됐다”는 식의 매스컴 보도로 성사되지 못한 사례도 종종 있었다. 이런 보도 자세는 북한 측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굴욕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남북 IT학술 모임에 임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협조하고 발전을 꾀하기 위해 모임을 갖는다”는 점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의욕이 지나쳐 현실성이 없는 높은 목표를 설정해 상대방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의제를 내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무심하게 생각될 수 있는 이런 문제들로 인해 노력에 비해 결과가 흡족하게 나타나지 못하는 게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통신부호체계를 남북이 통일하자거나 정보통신 인프라를 북한 전역에 구축하고 평양에 콜센터와 인터넷 센터를 세워서 운영하자고 제안한다면, 정치적 체제를 중시하는 그들로서는 너무 민감한 사안이라 엄청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매우 좋은 제안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북의 체제를 이해하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않고 일방적으로 우리가 정한 개념으로 IT 모임을 이끌어 나가려 한다면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항상 북한의 눈높이에 맞춰 서로 이해하고 협조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부분에서부터 걸음마를 시작해야 모임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북에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IT용어 문제와 교육문제에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평양에다 IT교육기지를 세우고 IT전문가를 배출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개성공단에 취업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사업이 제대로 공조만 된다면 이것 하나만으로도 남북 IT모임의 훌륭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 사업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된다면 IT용어와 교육이 통일돼 민족의 동질성 회복은 물론 남북의 신뢰도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킬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규정 통일이라는 과제가 있긴 하지만 객관적 IT기술 자격평가는 민간자격 관리기관에 맡긴다면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남북 IT모임이 성공하려면 재일조선인과학기술협회의 ‘IT용어 표준화 공동연구 사업’의 역할과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의 현실은 안타깝게도 남북 당사들이 직접 만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 있지 않아 우회적인 창구로 과협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과협이 남북을 초청해 국제회의 형식으로 남북 IT학술 축제의 장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협 관계자들은 뜨거운 민족애와 정성으로 무리 없이 지금도 이 일을 해나가고 있다. 특히 열악한 일본 땅에서 우리의 문화를 전파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어떤 해외 동포들보다도 남북 IT분야 모임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점에 비춰 볼 때, 남북 양측의 전문가나 정부 당국 그리고 산업계에서 남북모임이 성사될 수 있도록 과협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지구촌 경제는 정보산업이 주도하고 있다. 우리 민족정신의 원형은 정보산업분야에 적합하다고 한다. 세계적인 강세를 보이고 있는 북한 IT 기술의 두뇌와 우리의 마케팅 기술을 결합하면 21세기 지식 정보화시대의 거대한 공룡이 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아주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신뢰감 구축에 나선다면 통일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우리 앞에 얼굴을 내밀지도 모른다. <조석환 평택대학교 교수 shcho@ptuniv.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