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업체인 A사는 지난해 인도 시장에 휴대폰을 대량으로 수출했다 낭패를 봤다. 예상치 못했던 소프트웨어(SW) 버그(결함)로 리콜 사태 일보 직전까지 갔기 때문이다. 지역별로 사용하는 코드 입력에 이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 회사는 부랴부랴 사태를 수습했지만,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A사 관계자는 “국가마다 서로 다른 SW를 적용하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결함이 발견되기도 한다”고 해명했다.
중견업체인 B사는 올해 초 유럽으로 수출했던 휴대폰 중 일부 물량에 SW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은 게 화근이 돼 제품을 회수하는 사태를 빚었다. 서비스업체의 새로운 서비스를 휴대폰에서 지원하지 못해 제품 회수가 불가피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초기 제품들은 가끔 SW 버그가 발생한다”며 “지금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말했다.
외국계 휴대폰업체인 C사 역시 최근 국내에 출시한 휴대폰에 문자 오류가 발생해 소비자들의 항의로 곤혹을 치렀다. 이 회사의 제품을 구매한 한 소비자는 “회사 측으로부터 ‘업그레이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다”며 “제품 출시 전 충분한 테스트를 하지 못해 버그가 발생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휴대폰업계가 SW 버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휴대폰이 컨버전스의 급진전과 함께 다양한 신규 서비스 제공으로 과거와 달리 지원하는 SW가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새로운 SW를 탑재할 경우 제품 출시 후 테스트 과정에서 잡을 수 없는 문제들이 종종 발생, 업체들의 애간장을 타들어가게 만들고 있다. 버그 문제로 제품 리콜 사태라도 벌어지면 브랜드는 물론 금전적 손실도 막대해지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너무 많다=휴대폰은 갈수록 PC화하고 있다. 운영체계(OS)는 물론 콘텐츠도 크게 늘어났다. 휴대폰에서 구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그만큼 많아졌다. 휴대폰으로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는 시대다. 일부 제품은 늘어나는 용량을 따라잡기 위해 외장형 저장장치까지 동원한다.
필연적으로 SW 버그가 새로운 문제로 등장했다. 과거에는 LCD나 배터리 등 하드웨어 결함이 대부분이었다. 문제 해결도 쉬웠다. 부품을 교환해주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SW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다. SW 업그레이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제조회사가 리콜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 업체들은 초기에 사후서비스(AS)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문자가 깨지거나 동영상이 정지하는 버그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며 “대부분 문제는 초기화를 통해 쉽게 해결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리콜밖에 해결책이 없다”고 말했다.
◇“버그 알고도 제품 출시”=하지만 제품의 결함을 알고도 그대로 출시하는 업체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소비자 보호 차원의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모 제조업체 SW 개발팀장은 “사소한 버그는 일단 제품을 출시한 후 잡아간다”며 “버그를 완벽하게 잡아 제품을 출시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휴대폰업체간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버그를 알고도 제품을 출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에 출시된 100만화소 카메라폰도 버그로 업체들이 판매에 상당기간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업체 관계자는 “제품 출시가 1주일만 늦어도 제품 가격이 크게 떨어진다”며 “사소한 문제는 업그레이드를 통해 해결한다”고 말했다.
종합해보면, 휴대폰업계가 SW 결함을 알고도 제품을 출시한 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신제품 출시 주기를 앞당기고 있다는 것이다.
◇외국계, 완벽한 테스트 후 출시=반면 노키아 등 외국계 메이저업체들은 연구소에서 완벽한 테스트 후 제품을 출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노키아코리아 관계자는 “테스트 단계에서 조그마한 결함이라도 발견되면 제품은 출시하지 않는 게 본사의 방침”이라며 “제품 출시 주기가 다소 길더라도, 완벽한 제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국내 휴대폰 업체들이 내수 시장에 출시하는 제품 중 일부를 제대로 테스트도 마치지 않고 출시하는 경향이 있어 문제로 지적됐다. 업계 관계자는 “최초 출시라는 문구를 달기 위해 업체간 경쟁이 치열할 때 완벽하지 못한 제품들이 많이 나온다”며 “최근에는 대부분 SW 결함을 해결하지 못해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익종기자 ij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