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은 제 2의 창조’라는 말이 있다. 경제성장을 이룬 일본은 모방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후 원천기술이 딸리는 일본은 서구의 발전한 기술을 수용하는데 진력을 다했다. 심지어 산업스파이의 왕국으로 불릴 만큼 기술을 빼내는데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지금이야 세계에서 최고의 원천기술을 확보한 나라이지만 불과 수 십년 전 만해도 일본은 모방의 으뜸 국가로 경계의 대상이 되곤 했다.
산업기술의 모방은 발전을 위해 토대가 된다.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도 상당수 모방에 기인했다. 기술을 베끼고 따라하는 것은 어찌보면 부도덕한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모방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처음은 모방이지만 계속 발전해 나가면 독자기술이 되고 완전한 자기의 것이 된다. 발전의 단계에서 볼 수 있는 ‘모방의 미학’이다.
모방은 비단 기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 문화개방이 전격 이루어진 문화계에도 모방은 바람은 거세다. 패션이 그렇고 노래가 그렇다. 최근에는 일본의 유명 팝가수가 방한해 콘서트를 열었다. 좌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일본 팝가수의 노래와 율동에 열광했다. 노래를 따라하고 일부는 의상까지 모방했다. 좋아서 그러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글로벌 시대 국경이 무슨 의미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컨버전스(융합)는 IT기술 이전에 이미 문화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문화는 민족 고유의 정신세계이고 원류이다. 아무리 타 민족의 문화를 따라한다고 해도 바뀔 수 없는 것이 민족이라는 운명공동체다. 타국의 노래, 의상, 음식이 맞는다고 해서 문화를 기호(嗜好) 정도로 생각한다면 큰 오류다. 글로벌시대에서 지역과 국경의 의미가 사라졌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문화이다. 글로벌시대 오히려 더 강해진 것이 있다면 ‘문화의 국경’이다. 전파시켜서 지배할 것이냐, 생각없이 수용해서 지배 받을 것이냐는 하기 나름이다. 20세기초 힘의 지배, 20세기 말 경제지배 였다면 21세기는 문화지배의 시대다. 그래서 문화의 모방은 더욱 위험하다.
기술의 모방은 경제성장이라는 부산물을 남긴다. 그러나 문화모방은 자칫 문화 피지배라는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지금은 문화전쟁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