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물용 용인무의(疑人勿用 用人無疑). ‘의문스러운 사람은 애초에 쓰지 않고, 일단 기용한 사람은 의심하지 않는다’란 말이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역사소설 열국지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이는 경쟁이 치열하고 환경이 급변하는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필자의 인사 원칙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쓸 것인가. 원칙은 두 가지다.
무난한 사람의 가치도 존중한다. 그러나 타인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더 눈길이 간다. 우리 사회는 획일주의가 강하다. 세칭 ‘왕따’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거나 말하는 것은 스스로 두려워하고 있다. 하지만 벤처 정신은 새로움을 찾는 데 있다. 기존의 교과서에 나와 있지 않은 기술과 상품을 찾으려는 실험 정신이 벤처의 기반이다. 이 때문에 독창적인 사고력과 실천력을 갖춘 사람이 벤처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두번째는 자신의 환경에 지배되지 않고 환경을 능동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재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편안한 환경을 찾는 욕망이 있다. 또 자신의 처지를 환경탓으로 돌리려는 습성도 있다. 그런데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면 인간도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셈이다. 거친 폭풍우와 파도에 휩싸였다면 선장은 강인한 의지로 활로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불운을 한탄만 한다면 거함이라도 가라앉는 것이 정해진 이치다. 불리한 환경에 처했더라도 돌파구를 찾고 환경에 지배력을 행사하려는 투지를 갖고 있는 직원과 동료 기업인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벤처기업들은 현재 대단히 불리한 환경에 처해 있다. 지난 99년부터 불기 시작한 벤처 열풍 이후 벤처기업 수는 1만1000여 개에서 7000여 개로 급감한 상태다. 더 큰 문제는 활기와 의욕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코스닥 지수도 최고 수준에 비해 8분의 1수준으로 추락했다. 경기침체도 벤처 기업인들에게는 위기의 환경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우리 벤처기업들은 경제의 혁명을 일구어왔다. IT 신기술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그 자체가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벤처 정신은 우리 사회 전체의 자산이었다. 그런 벤처기업들이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개별 벤처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이것은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당연히 정부의 지원이 시급한 시점이다. 이미 많은 기업인과 전문가들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최첨단의 제품을 개발한 후에도 막상 시장 진입을 앞두고 좌절하는 벤처기업이 적지 않다. 그들에는 적극적인 금융 지원이 필요하다. 거대 기업 중심의 경제 질서속에서 분투하는 벤처기업들로서는 제도를 통한 지원이 절실하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선별해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일 것이다. 또한 크고 안정적인 직장만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에게 패기와 도전 정신을 심어주는 사회적인 캠페인도 벤처 부활을 위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벤처기업들은 마냥 우호적 환경의 조성만을 기다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벤처기업들은 폭풍우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멈춰서서 막연히 도움의 손길을 기다릴 수는 없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돌이켜보면 벤처가 막 부상하던 순간에는 벤처 기업에 유리한 환경이 하등 없었다. 벤처인들이 환경을 지배하고 활로를 찾아냈다. 오히려 정부가 발 벗고 지원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을 벤처기업들이 이끌어냈던 것이다.
요즘은 벤처 특유의 투지가 약해진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불행히도 벤처 열풍이 불던 시절에 대한 향수도 아직 강하게 남아 있다. 벤처 초심으로 돌아가 능동적으로 환경을 개척하고 지배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그럴듯한 아이디어나 화려한 프레젠테이션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벤처기업에 기술력이 없다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물거품이 될 우려가 크다. 정부의 지원과 함께 자생력을 갖추기 위한 벤처기업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진정한 벤처 부활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다.
<장영규 코리아퍼스텍 사장 jang@first2000.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