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젠 균형재정에 신경을

 내년도 정부 예산의 규모와 쓰임새가 대략 모습을 드러냈다. 정부 각 부처가 내년도 살림살이를 위해 필요하다고 신청한 예산 요구액은 올해보다 5% 증가한 총 195조3000억원이다. 이 가운데 차세대 성장동력 사업 추진에 필요한 연구개발(R&D)부문 예산은 올해보다 무려 11.8% 늘어난 6조7375억원이며 산업·중소기업부문 예산은 6.1% 증가한 5조9788억원으로 나타났다.

 물론 각 부처의 예산 요구는 해당 관서의 희망사항일 뿐 그대로 편성되지는 않겠지만 예산 편성의 기초를 이룬다는 점에서 보면 R&D와 중소기업 부문에 대한 정부의 투자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전체 예산요구액도 예산당국이 구상하고 있는 내년 예산 규모와 큰 차이가 없어 과거 어느 때보다 내년 살림살이 내용을 잘 반영한 예산요구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5% 대의 예산요구 증가율은 그간 매년 25% 안팎에 이르던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줄어든 것이다. ‘아니면 말고, 어차피 깎일 것을 감안해 일단 부풀리고 보자’는 뻥튀기식 신청 관행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혁신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과다 요구-대폭 삭감’이라는 예산편성 작업의 비능률도 줄어들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나름대로 짜임새 있는 예산요구안이 나온 가장 큰 이유는 올해부터 새로 도입한 ‘총액배분 자율편성(top-down)’제도 때문이다. 한마디로 예산당국이 사업·부문별로 예산 한도를 정해주면 부처별로 이 범위 내에서 자율적으로 편성하는 것이다. 때문에 각 부처들이 시급하지 않은 사업은 줄이는 등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사전에 알아서 가린 것이다. 하지만 일부 부처의 경우 여러 부처가 관련된 사업의 예산은 줄이는 대신 단독 사업의 예산은 부풀린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져 아직 개선의 여지가 남아 있음을 말해준다.

 이제 예산당국이 이 예산요구액을 바탕으로 국회에 제출할 정부예산안 편성작업을 벌여야 한다. 예산당국이 철저하게 따지겠지만 유념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우선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균형 예산의 편성과 긴축재정 의지를 약화시켜선 안된다. 국가채무가 이미 지난해 말 현재 165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34%에 달해 재정악화가 위험 수위에 달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정부예산안 편성에서 합리적인 정책 우선 순위에 입각해 철저히 적용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된다. 국가혁신체제(NIS) 구축과 직결되는 차세대 성장동력 육성과 산업단지 혁신클러스터 추진 등 200억원대를 상회하는 새로운 사업은 우리나라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도 꼭 필요하다. 나노-바이오기술, 우주발사체 개발 등 미래지향적 원천기술개발사업도 마찬가지며 중소기업 기술혁신 개발 사업 등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데에도 결코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정부예산안 편성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산당국의 정책의지다. 17대 국회가 새로 출범한 만큼 국회심의 과정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예산 편성에 대해 철저히 따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지역구에 유리하도록 갖가지 주문과 압력이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또 부처별로 배정되는 예산한도는 각 부처의 ‘밥 그릇 크기’로 비유될 정도로 인식되고 있음을 고려하면 부처 움직임도 심상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예산당국이 중심을 잡고 조율하지 않는다면 해결하기 힘든 문제다. 무엇보다 예산편성 단계에서부터 모럴해저드를 막는 것이 첫 단추를 잘 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