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내란죄, 외환죄 등을 제외하고 사법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 입법에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통치권자에게 주어지는 권한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발언은 정책의 최우선 순위다. 행정수반으로서 대통령의 발언은 국가의 흥망, 존폐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들어선 이후 ‘말’이 계속 문제가 되어 왔다. 정치판에서야 늘 있어 온 일이다. 서로에 대해 고운 말 보다는 헐 뜯는 말이 우선하는 것이 정치라는 것에 대해 국민들은 이미 익숙해져 있다. 그래도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큰 위력을 갖는다. 그것은 대통령을 대통령답게 유지시켜 주는 최소한의 존중이자 국가의 권위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이후 줄곧 틈날 때마다 문화산업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해 왔다. 최근에는 신성장 동력에 문화산업을 추가해야 한다는 의미있는 발언까지 했다. 그 만큼 문화산업에 대한 가능성을 높이 샀다는 얘기다. 문화관광부내에서도 신성장동력으로 문화산업이 추가되리란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대통령의 의지, 발언과 상관없이 문화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예산은 해마다 줄고 있다. ‘청와대 생각’은 문화산업의 중요도에서 평점 A를 주고 있는 반면 국가예산을 집행하는 실무부처인 ‘예산처 생각’은 D정도를 주고 있는 상황이다. 산업의 중요도를 따지자면 시각마다 반론의 여지는 있다. 따라서 예산편성에 누굴 더 주고 누구를 덜 주자는 ‘편 가르기식’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행정의 수반인 대통령의 의지가 정부 예산정책에마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심히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더욱이 미래 먹거리에 대해 공감하는 수준이 대통령 다르고 예산집행부처 다르다면 이번 정권의 산업육성책이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행정의 최고 수반이든 산업육성의 깃발이 무색해 진다면 정권의 정체성마저 모호해질 수 있다. 대통령의 발언은 정치적 쟁점화가 될 것도 있다. 그러나 산업육성에 있어 대통령의 발언은 결코 쇼가 될 수 없다. 민생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산업 육성이라는 경제항로를 가고 있는 노무현 산업호의 선두(船頭)에 무엇이 있는지 항해사와 갑판장들이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디지털문화부·이경우기자 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