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전화 단말기의 보조금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동전화사업자들의 단말기 보조금 지급행위에 대해 통신위원회가 영업정지라는 초강경 조치를 취하자 이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얼마 전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된 ‘네크워크 콘퍼런스 2004’에서 조너선 슈워츠 선마이크로시스템스 사장이 행한 개막연설 장면이 오버랩됐다. 슈워츠 사장은 LG전자의 단말기를 보이면서 이동통신 시장에 대한 이야기로 연설을 시작했다. 이통통신 단말기를 무료로 제공하고 사용료를 받는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했다.
선의 슈워츠 사장이 유닉스나 자바보다도 이동통신 이야기를 화두로 던진 것은 이동통신의 비즈니스 모델이 향후 IT업계의 판도를 좌우할 유틸리티 컴퓨팅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유틸리티 컴퓨팅은 IT 자원을 고객이 빌려쓰는 만큼 비용을 지불토록 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선은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 슈워츠 사장의 표현을 빌리면 “네트워크화된 IT자원을 통신이나 전력, 석유, 수도와 같은 일용재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다.
정도는 다르지만 IBM이나 HP 등 다국적 컴퓨터 업체들도 유틸리티 컴퓨팅을 차세대 전략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이 완성되면 고객은 메인 프레임이나 유닉스 서버, 대형 스토리지와 같은 하드웨어를 비싼 값 주고 구매하지 않아도 된다. 단지 고객은 원하는 하드웨어와 솔루션을 골라서 사용하고 한달 뒤 또는 분기별로 일종의 IT자원 사용료만 지불하면 된다.
고가의 하드웨어를 구매하지 않고 ‘서버 보조금’ 덕분에 공짜로 들여 놓는 것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하지만 현재의 시장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꾼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우려가 생긴다. 다국적 업체의 제품을 재판매해 온 국내 컴퓨팅 업체는 이통통신업체의 대리점 수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도 기업이나 공공기관들이 IT를 전기나 수도처럼 사용하고 매달 요금을 내야 하는 새로운 상황이 목전에 있음에도 한국의 어떤 기업도 이 같은 사업 비전을 내놓지 않고 있는 점이 걱정스럽다. 생각같아서는 공공재로서 IT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맡을 ‘대한민국IT공사’를 설립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이창희 컴퓨터산업부 차장 changh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