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을 즐기는 이 있는가. 혹여 그런 사람이 있다면 말을 안 하는 게 상책이다. 구설이 쌓이면 화를 당할 수 있다. 입이 있으니 말을 안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요즘은 말이 너무 많다. 그리고 거칠다. 사람이 할 말을 하는 건 나무랄 일이 아니다. 문제는 말이란 게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점이다.
여당 정치인의 “계급장 떼고 토론하자”라는 말에 “그런 걸 갖고 계급장 떼나?”거나 “대통령 덕에 당선돼 놓고…” 라는 등의 말이 인구에 회자하고 있다. 마치 치고 받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이런 판국에 검찰 조직개편과 관련한 검찰총장의 “목을 치겠다”라는 발언이 터져 나왔다. 이에 대해 대통령의 엄한 질책이 있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나라에 득 될 게 없다. 거친 말이 오가면 세상이 삭막해지고 자칫 국정의 난맥상으로 비칠 수 있다.
세상살이에는 법도란 게 있다. 누구나 지켜야 할 법과 도리다. 말에도 절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이를 무시하면 그 말이 자신을 향한 칼이 된다.
말 잘못해 감옥에 간 정치인도 있다. 입이 화를 부른 것이다. 말 많기에는 누가 뭐래도 단연 정치권이다. 선거 직후 여야는 한 목소리로 민의를 내세워 ‘상생과 화합’을 약속했다. 양당 대표가 만나 협약서도 교환했다. 국민에게 기대를 갖게 했다. 그리고 두 달여가 지났다. 기대가 실망으로 무게중심이 옮아가는 듯하다. ‘상생과 화합’에 균열의 조짐이 보인다.
국회상임위원장 배분을 놓고 자리다툼이 결정적 요인이다. 상생과 화합은 인고를 동반한다. 갈등과 이견은 대화를 통해 풀어야 상생이 가능하다. 과거의 폭로전과 비방전, 몸싸움은 역사 속에 묻어야 화합을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자리가 무엇이기에’ 국민의 눈흘김과 지탄을 받으면서 차지하려는지 모를 일이다.
입은 복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화도 준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만 봐도 그렇다. 원가 공개 공약이 17대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에는 복이 됐다. 정부가 수용 불가를 밝히자 지금은 여당의 화근이 되고 있다. 시민단체와 서민은 공약을 지키라며 반발한다. 지지자가 반대자로 바뀐 것이다. 급기야 지지율이 급락했다. 일관성 상실에 대한 응징이다. 이라크 추가파병. 신행정수도 이전 등도 쟁점이다.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하나같이 힘들다.
세상 사는 데 말은 상호신뢰의 가교다. 가교가 붕괴하면 대립과 갈등에 휩싸인다. 여기에는 예외가 될 수 없다. 사람은 잘못할 수 있다. 이때는 변명보다 솔직히 사실을 밝히고 이해를 구하는 게 옳다. 자신은 빠지고 남한테 십자가를 지울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침묵하라는 게 아니다. 거친 말 대신 당당하게 참된 말을 하자는 것이다.
참된 말은 사회를 화합시키고 통합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15일 국무회의에서 “우리는 지금 변화가 필요한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과거 ‘아니면 말고’식의 어법이나 언행 불일치의 언어풍토는 버려야 한다. 언행이 따로 놀면 사회에 불신만 조장한다. 이는 도덕불감증을 잉태한다.
말에도 품격이 있다. 따뜻하고 품격이 있는 말 한마디가 우리 삶을 향기롭고 풍요롭게 만든다. 이것이 변화의 시대 새 정치의 출발점이고 순리다.
<이현덕 논설주간 hd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