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밸리는 피신중’
최근 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SPC)와 검·경 합동단속반의 불법 소프트웨어 일제단속이 진행되면서, 가뜩이나 불황에 허덕이는 테헤란로 등 서울 강남의 IT밀집지역의 게임업계에 흉흉한 기운이 불어닥치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에도 삼성동 소재 게임업체 W, O사와 모바일솔루션업체 L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벌어져, 한 건이라도 더 찾아내려는 단속반과 적발수위를 최소화하려는 업체측 사이에 묘한 줄다리기가 펼쳐졌다. 이미 지난주 온라인게임업체 E사와 모바일게임업체 M사가 게임개발 등에 사용중인 소프트웨어가 무더기로 단속에 걸리면서 억대의 과징금을 내야 할 형편이다.
상황이 일파만파 번지자 일부 업체들은 보유중인 개발용 소프트웨어와 각종 툴과 함께 개발자를 집으로 피신시키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재택근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사실상 도피에 가까운 대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번 단속에 대한 업계의 반발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 중소 게임업체 사장은 “아무래도 소프트웨어 사용환경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중소·영세업체를 중심으로 단속 타깃이 설정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실적 높이기 위주로 토끼몰이식 단속을 하는데, 편법으로라도 피하고 보자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의 개발자는 “연간 영업이익에 맞먹을 정도의 과징금 처분을 받는다면, 회사도 정상적인 경영관리를 할 수 없고 그러면 또 다시 소프트웨어 정식구매나 건전한 활용구조는 깨지는 것 아니냐”며 “기관이 나서서 불법소프트웨어 사용의 악순환을 강요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정품 소프트웨어 활용 문화가 정착되고, 불법복제가 근절돼야 한다는 것은 사회적 약속이다. 업체들이 스스로 소프트웨어 활용에서부터 경쟁력을 높여가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약속의 실천이 업체들의 ‘기’를 꺾는 방식으로 흐른다면, 자칫 ‘빈대 잡으려다 초가 삼간 다 태우는’ 우를 범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디지털문화부·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