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포럼]보드게임과 온라인게임의 조화

국내에서는 흔히 게임이라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온라인게임을 떠올린다. 게임의 대명사처럼 자리잡은 온라인게임의 역사가 실은 10년도 채 안 됐다는 사실에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일반적으로 게임이라고 하면 오프라인에서 즐기는 테이블 보드게임을 말한다. 유럽 문화권에서 온라인게임은 게임의 한 분야일 뿐이다.

 여기서 보드게임과 온라인게임을 비교해보자. 온라인게임은 컴퓨터와 네트워크의 발달로 즐기게 된 게임을 말한다. 장르별로는 캐주얼게임, 롤플레잉게임, 웹보드게임 등이 있다. 보드게임은 수천년 역사를 가진 전통적인 게임형태로 바둑, 장기, 체스 등 주로 테이블 위에서 카드와 소도구를 이용해 즐기는 놀이다.

 온라인게임이라고 불리는 것도 보드 게임과 스포츠 등 전통적인 게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롤플레잉게임도 주사위, 필기도구 등을 이용해 캐릭터를 키워가는 테이블 롤플레잉게임에서 발전된 것이다. 어쨌든 첨단기술이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것을 간접경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분명한 일이다. 문제는 첨단기술이 상상력을 제한하는 역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처음 보드게임을 접했을 때다. 온라인게임의 화려하고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탓인지 조잡한 소품을 가지고 노는 ‘애들 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둘러앉아 게임을 시작한 뒤 선입견은 곧 눈 녹듯 사라졌다. 게임자체는 뭔가 부족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이 참가하고 주도하면서 판도는 달라진다. 게임에 참여한 개개인의 개성, 다양성이 게임을 생동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온라인게임은 인스턴트 음식이다. 간편하고 빠르게 현대인의 구미를 맞춰준다. PC와 인터넷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누구든 무슨 게임이든 상관없이 즐길 수 있다. 보드게임은 이에 반해 상당히 불편하다. 장소도 필요하고 사람도 불러모아야 한다.

 얼마전 백화점에서 어린이날 선물로 보드게임을 권유하다가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 당시 부모로 보이는 한 분의 말씀 때문이다. “이런 거 사주면 애들이랑 같이 놀아줘야 해서 귀찮아요. 혼자 놀 수 있는 걸로 사주는 게 편하지.” 현대인의 비극을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까 싶다. 세대가 단절되고 가족이 해체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필자는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던 프로게이머 출신이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은 그야말로 첨단문화의 정점을 상징한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통해 컴맹을 탈출하고 문명의 이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었다. 국가적으로도 스타크래프트와 온라인게임이 한국을 IT강국의 대열에 올려놓는 데 적지 않은 공헌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게임중독을 경험해야 했다. 어느 순간 의미와 목표를 상실한 채 승부에만 집착한다거나 매일 특정 게시판을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자신의 모습, 더 무서운 것은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교류는 회피하고 고독을 즐기는 단절된 인간상으로 변모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프로게이머 생활을 마감하고 몇년 전 보드게임 전문유통업체를 창업했다. 보드게임만의 매력, 이를테면 자연스러운 놀이를 통해 사람을 사귀고 세대를 이해하는 즐거움을 하나 둘씩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드게임이 온라인게임을 완전히 치환해서 공동체적인 놀이문화로 자리잡아야 한다든지, 보드게임이 온라인게임 중독증상을 완전히 치료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보드게임이 온라인게임 일변도로 발전한 현재 기형적인 국내 게임산업과 문화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는 상보적 관계로 자리잡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현대인들은 빠르고 바쁘다. 무관심하고 이기적으로 변화한다. 그러나 때로는 직접적인 교류, 함께 산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도 소중하다. 보드게임처럼 함께 모일 수 있는 문화의 중요성도 점차 부각될 것이다.

◆윤지현 페이퍼이야기 사장 vitaminee@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