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의 시사 주간지 US뉴스(US News & World Reports)에 IT산업의 거장 마이크로소프트(MS)의 성장과정에 관한 재미있는 기사가 게재돼 눈길을 끌었다. 내용인즉 IBM이 1981년 PC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당시 직원이 30여명에 불과한 MS에 도스(DOS) 개발을 의뢰함으로써 IBM과 MS가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했고, 그 결과 광대한 IBM PC호환기(클론) 시장이 폭발적으로 창출됐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의 황제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해서 이룩한 성공의 표본이라 하겠다.
물론 IBM과 MS간 이해 관계의 충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만약 IBM이 도스 개발을 MS에 의뢰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추진했다면 아마도 클론 시장은 전혀 형성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MS도 매출 260억달러에 달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과연 한국적 기업 풍토 속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협력모델을 통해 MS와 같은 기업이 탄생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대기업이 IBM처럼 신사업을 추진한다고 가정해보자. 그 대기업은 사업성과 성장성이 좋으면서도 신사업의 핵심이 되는 부분을 외부에 아웃소싱할 수 있겠는가. 사기업이든 공기업이든 불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대다수의 기업은 모든 것을 자기의 역량 속에서 관리하기를 바라고 있다. 다수의 자회사를 통해서 크고 작건 관계없이 독식해 왔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인간 관계의 사슬이 없이는 정보조차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 중소기업의 처지다.
우리나라에 현재 활동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대략 290만개사다. 전체 기업의 99.7%다. 이곳에 고용된 인원도 전체 고용 인구의 86%에 달하는 약 1000만명이다. 이들 중소기업의 매출은 국민 총생산의 50%를 자치한다.
그러나 지금 중소기업들은 자금난, 인력난, 판매난 속에서 극심한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다. 기술 개발이나 연구 활동에 대한 투자는 생각할 여지도 없다.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대기업과의 종속적 관계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대기업들이 중소기업과의 협력보다는 출혈 경쟁을 유도해 자신들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려는 현실은 피할 수 없다. 하루 빨리 대기업과의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개선되어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윈윈할 수 있을 것이다.
수평적 관계로의 개선은 중소기업의 신속한 자기 혁신이 전제가 되고, 대기업으로부터 좋은 파트너로 평가 받을 때 비로소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자금과 인력, 그리고 기술이 열악한 중소기업에 외부 지원 없이 자기 혁신을 권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특히 핵심기술 개발을 위한 R&D 투자는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포토닉(Photonic) IC 같은 핵심기술 개발에도 적어도 30억∼50억 자금이 소요된다. 성공 여부는 아무도 예측할 수조차 없다. 그만큼 정부의 지원 없이는 미래 생존을 위한 기술 개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요소 산업 투자는 거의 완료됐다. 때문에 신규 수익 모델이 발굴되지 않는 한 대기업의 투자와 고용 증대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기술 개발에 따른 생산성 향상은 오히려 고용을 감소시키는 추세다.
다양한 산업 분야에 분포돼 있는 중소기업이 활성화해야만 국가 경쟁력이 강화되고 고용의 기회가 확대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제 정부는 중소기업을 지원 육성함에 있어 선택과 집중의 묘를 살려야 한다. 앞으로 전개되는 신산업분야(IT·BT·NT)에도 중소기업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핵심 기술 개발을 위한 보다 많은 정책 자금의 지원도 절실하다. 그러나 성과를 엄정히 분석, 평가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이봉훈 두일전자통신 회장 bhlee@atlasinve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