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있는 대학과 정부출연 연구기관 291곳에 설치된 7만여 개의 공공 연구개발(R&D) 장비의 공동 활용이 당초의 취지·기대와는 달리 크게 저조하고, 노후 장비도 30%가 넘는 등 관리마저 제대로 안 돼 이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산업연구원(KIET)이 내놓은 ‘공공부문 R&D장비의 문제점과 활용 극대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과 연구기관이 보유한 공공 R&D장비 중 고작 16.8%만이 공동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활용하고 있는 것도 실제로는 활용 가능한 장비의 45% 수준에 머물러 공공 R&D장비의 공동 활용제도를 도입한 정부의 정책이 무색할 지경이다. 당초 정부가 R&D장비 공동 활용을 권장하고 지원에 나섰던 것은 고가의 연구 장비를 도입할 수 없는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들의 기술 개발을 촉진하려는 데 가장 큰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정책 의도와는 달리 R&D장비 구축과 활용 정보 등에 대한 DB화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데다가, 일부 기관들의 폐쇄적인 자세와 비협조로 국민의 혈세로 사들인 고가의 연구 장비가 사장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이나 벤처들이 R&D를 위해 장비를 활용하고 싶어도 필요로 하는 장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외국에 의뢰하는 해프닝도 벌어지고 있다. 또 일부 기관의 비협조 때문에 기업들이 다른 연구기관에 연구 용역을 주는 사례도 많은 것 보면 장비를 보유하고 있는 기관의 자세에도 큰 문제가 있다. 장비 공동 활용이 극도로 부진한 부품 소재 관련 연구 분야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부품 소재 분야의 공동 활용에서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3년간 산학연 전체 장비 사용시간이 실제 장비 가동 시간(86만3017시간)의 0.5%인 4179시간에 불과했다고 한다. 모 기관은 6억원에 가까운 합금 소재장비를 2003년 한 해 동안 총 4회 사용했고, 5억원에 상당하는 부품 시험장비는 2년간 5번밖에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장비 공동 활용이 과연 현실적으로 실효성 있는 제도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일부 기관의 폐쇄적인 자세도 문제지만, 정부도 고가 장비의 공동 활용과 산학연 연계라는 이상에만 매달려 현실적인 보완책에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미비한 R&D정보 종합시스템 구축은 물론이려니와 대학과 연구기관들이 연구 장비를 유지 보수하고 관리하는 데 필요한 지원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연구 장비 중 10년 이상된 노후 장비가 31.8%나 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더구나 빨라지고 있는 기술 발전 속도에 발맞추려면 낙후된 장비도 적절한 시기에 교체돼야 한다. 하지만 대학과 연구기관들의 열악한 예산으로 이들 장비를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도입한 장비의 80% 이상이 외국산 제품이다 보니 고장이 났을 경우 고쳐줄 엔지니어도 없고, 외국에 수리를 맡기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등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공공 R&D장비 공동 활용 정책은 산학연 공조의 틀을 강화하고 벤처 등 자금력이 열세한 중소 기업들의 기술 개발 의욕을 고취시켜 시너지를 극대화한다는 취지에서는 아주 바람직한 제도다. R&D장비의 공동 활용 시책이 용두사미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지원과 장비 활용 여부에 따른 철저한 관리 감독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