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빠진 독에 물 붓기?’ 지금까지 국내 연구개발(R&D)장비인프라 구축에 3조원 이상의 국가예산이 사용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지만 정작 연구자들은 장비가 없어서 연구를 못한다고 말한다.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국책사업으로 추진되는 R&D 인프라 센터 설립 계획에 끼어든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의 이기심이 꼽힌다.
실제로 국책과제에 참여했던 한 대학교수는 “국가 발전을 위한 센터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센터 설립 전부터 자신들의 이권을 내세우고 있어 신물이 난다”며 “다시는 국책센터 설립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까지 말했다.
요즘 각 지자체는 물론 대학들까지 가세해 이른바 ‘모양새 나는’ 국책 연구개발 인프라 시설 구축을 둘러싼 지자체들의 유치 경쟁은 점입가경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어떤 국책기관이나 인프라 시설을 유치하느냐에 따라 지자체와 부근 학교의 역량이 평가되는 분위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욕만 앞세워 우선 국책사업을 가져 온 기관들 가운데에는 사업 추진 중 문제에 봉착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사태까지 겪고 있는 기관이 부지기수인 게 현실이다. 실제로 클린룸 시설을 설계하는 한 회사의 관계자는 “국내에 수많은 클린룸과 연구팹이 만들어지지만 어떤 기관도 연구를 위한 가장 최적화된 팹을 짓는 설계를 요구한 적이 없다”며 “그저 국책과제를 획득하기 위해 기준에도 안 맞는 팹 설계를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할 정도다.
‘우선 사업부터 가져오고 보자’는 식의 계획을 세운 지자체와 대학도 문제지만 이를 알고도 묵인하는 정부역시 비난의 화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대부분 부처는 사업권을 주면 그때부터 모든 사안은 유치기관이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로 방어막을 펴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런 논리로 일관하면서 ‘밑빠진 독에 물붓기’를 보고만 있어야 하나.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양적으로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 R&D예산을 사용하는 우리나라가 제한된 자원에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효율적인 정책, 그리고 이를 활용하는 연구자들의 양심적 자세를 기대해 본다. <경제과학부·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