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 차원에 머물던 전자태그(RFID) 사업이 점점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시범 사업이 추진되는가 하면 관련 협회와 단체도 속속 결성되고 있다. 그동안 다소 부족했던 기술 개발과 표준화·응용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연구도 활기를 띠고 있다. 정부도 잠정적이지만 주파수 대역을 확정하고 산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제시해 RFID 시장은 원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열릴 전망이다.
하지만 시장이 점점 무르익으면서 초기에는 미처 예상치 못한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가 RFID 분야를 둘러싼 각 부처의 이해 수준이다. 모든 부처가 똑같이 마스터플랜을 그리고 표준화를 외치는 듯하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엄연히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심지어 RFID라는 용어를 둘러싸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RFID의 핵심은 ‘네트워크’라는 주장에서부터 모든 산업의 ‘인프라’로 봐야 한다는 시각까지 해석도 분분하다. 이 때문에 산업계 일각에서는 정부부처의 정책과 추진 사업을 놓고 벌이는 주도권 다툼이니, 밥그릇 싸움이라는 둥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사실 이제 막 부상하는 분야인 만큼 어느 정도의 업무 중복은 불가피하다. 오히려 정부부처의 보이지 않는 경쟁이 산업계에는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한정된 자원을 낭비한다는 비난이 있을 수 있지만 시장 활성화에는 긍정적인 게 사실이다. 의욕 없는 정부보다는 과욕을 부리는 정부 관계자의 마인드가 오히려 산업계에는 힘을 실어 줄 수 있다.
단 기본적인 선은 지켜야 한다. 정책 입안의 기본은 산업계 입장에 서보는 것이다. 산업계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현실과 거리가 먼 탁상공론식 정책이나 오직 정부만을 위한 전시 행정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RFID 분야도 마찬가지다. 목적은 산업을 육성하고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럴싸하게 포장한 정책을 과시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RFID는 어떤 분야보다도 정부의 역할이 지대하다. 정책은 길어야 5년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이 때문에 멍든 시장과 망가진 산업은 고스란히 우리 경제가 감당해야 한다.
디지털산업부=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