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기업경쟁의 최상위에 오르면서 출현한 직업이 산업스파이다. 산업스파이 활동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먼저 경쟁 기업의 간행물, 공공기관의 조사보고서, 제품분석, 상대회사 직원의 발설 내용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합법적이다. 둘째, 상대회사의 퇴직사원을 포섭하거나 정보 입수를 위해 상대회사 사원을 스카우트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도의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셋째, 상대회사에 잠입해 매수·협박, 또는 본인이 직접 기밀서류를 복사·절취·강탈하는 것이다. 불법행위다.
최근에는 대기업이 투자를 미끼로 벤처기업의 기술을 빼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러한 기술이 있으니 투자해 달라’는 벤처기업의 요구를 듣고 기술만 빼내고 투자는 하지 않는 야비한 수법이다. 산업스파이 활동은 상대회사의 비밀이 누설된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데 있다. 따라서 절도보다는 복사를, 협박보다는 매수를 앞세워 더욱 음성화된다.
산업스파이 활동은 어떤 형식이 됐든 범죄행위다. 아이디어 강탈과 함께 상대회사의 자산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당연히 손해배상을 해야 하고 실행자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때로는 개발자의 일생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고 막대한 개발자금을 송두리째 빼앗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또 국가로 볼 때 막대한 자원의 손실이기도 하다.
국가정보원이 파악한 결과, 지난 98년 이후 5년 동안 기술유출 사례는 총 47건, 피해규모는 무려 38조원에 이른다. 연간 7조6000억원어치의 기술이 산업스파이에 의해 유출됐다. 몇몇의 산업스파이가 저지른 범죄행위가 국가기반 기술은 물론, 막대한 금전적 손해도 입혔다. 이 외에 기술개발 의욕 저하, 추후 분쟁에 따른 기업이미지 실추 등 ‘무형의 손실’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기술유출의 분야가 첨단 산업인 전자 및 정보통신산업 분야에 집중돼 있다는 것은 더욱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정부가 핵심 산업기술 유출방지 대책의 하나로 가칭 ‘산업스파이 처벌법’ 제정을 검토하고 있다. 뒤늦은 감은 없지 않으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법적으로 산업스파이의 행위를 제재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내 집은 내가 지켜야 한다. 보안의식만 가진다면 연간 7조6000억원의 돈을 벌고 부가적으로 기술개발 의욕까지 고취할 수 있다.
이경우기자@전자신문, kw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