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시장에서 기업끼리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문자 그대로 ‘사활을 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전자 정보통신 분야는 더욱 심하다.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로 접어들면서 전자 정보통신산업이 차지하는 비중과 사회문화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진 데다, 기술 발전속도 또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은 그만큼 기업들의 경쟁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좋은 제품을 개발하고 대량생산을 통해 원가 경쟁력만 확보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기술 발전과 시장의 변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가장 적절한 시기에 제품을 출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최적의 시기에 맞춰 시장에 대응하는 것, 즉 ‘타임 투 마켓’이 핵심 경쟁요소로 떠오른 것이다.
실제로 너무 일찍 시장에 들어갔다가 개발과 마케팅 비용만 실속없이 잔뜩 쓰기만 하고 오히려 후발업체에 이득만 안겨주기도 했다. 또 뒤늦게 시장에 들어가 선두업체의 두꺼운 벽에 부딪혀 허둥거리며 고전하는 사례도 수없이 많이 봐왔다. 이 밖에도 시장 축소, 확대, 이동 등 다양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낭패를 겪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일본 디스플레이업체들이 우리보다 먼저 신사업을 시작해 세계시장을 선점하고 있다가 시장의 확장 속도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결국 한국 업체들에 밀린 것이 좋은 예라고 본다.
이쯤 되면 ‘시장 대응 시기’가 기업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시장 진입 ‘시기’를 정확히 예측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시장은 생물체처럼 워낙 변화무쌍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그 시기를 찾는 일에 경영전략적인 차원에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3G 휴대폰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이미 오래 전에 개발이 완료됐지만 아직 시장이 성숙하지 않아 기업들은 출시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들어가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초기 시장에서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시장이 무르익는 상황을 봐가면서 진입하겠다는 기업도 있다.
디지털 컨버전스시대에 전자 정보통신 시장은 엄청난 규모로 팽창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들은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추고 이 거대시장을 향해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기업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경쟁상황을 정면 돌파해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첫번째 키 워드는 ‘독자기술 확보’ 여부다. 왜냐하면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차별화한 독자기술이야말로 기업의 대응능력을 결정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확보되지 않으면 결국 시장에서 종속적인 위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두번째는 파트너십을 강화해야 한다. 파트너십은 기업경영의 모든 영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특히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에는 시장을 창출하고 주도하는 확고한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더없이 중요하다. 그것은 시장에서의 리스크를 줄이는 일이기도 하다.
세번째는 시장정보력(market intelligence)을 높여야 한다. 시장은 이제 기업의 의지대로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같다. 이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들을 분석하고 전망하는 것 또한 기술 개발못지 않게 중요하다.
물론 이 세 가지를 갖췄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움직이는 물체는 고정된 과녁을 맞추는 것보다 어렵다. 변화가 빠른 시장 환경에서는 승리를 담보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 가지는 기본적으로 확보해야 할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토대로 삼아 우리 기업들이 타임 투 마켓의 효과적인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글로벌 시장의 치열한 경쟁에서 당당한 승자로 우뚝 서기를 기대해본다.
◆우남균 LG전자사장, namwoo@lg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