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통일과 과학기술

참여정부는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이라는 화려한 슬로건을 내걸고 출발했다. 북한은 ‘새로운 과학기술발전 5개년계획(2003∼2007)’을 비롯, 김정일 위원장의 신년사를 통해서도 과학기술을 유독 강조한 바 있다. 그 궁극적 목적이 다를 수 있겠지만, 과학기술이 성장과 경제발전의 핵심동력임을 남북이 함께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통일을 논하는 자리에서라면 과학기술은 빠트릴 수 없는 화두가 되고도 남을 만하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통일과 과학기술은 물과 기름처럼 외면하고 있다. 과학기술에 대한 내용적인 교류는 차치하더라도, 그 흔한 사회 집단으로서의 남북교류마저도 없다시피 한 실정이다. 굳이 생각해본다면 옥수수박사와 모 대학·단체의 학술교류가 전부인 듯하다. 나름대로 정보통신 분야에서만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뿐,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과학기술 남북교류협력은 민간차원은 고사하고 정부차원에서도 그 흔들리는 깃발과 구호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이러한 현실의 근간에 ‘과학기술은 전쟁을 돕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암묵적 시인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장 핵무기라는 단어가 연상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라면 혹 통일을 담당하는 높으신 분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잘 모르거나 그 속에 과학기술인이 끼어들 여지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이지 버리고 싶은 생각이지만, 과학기술인들 스스로가 통일에 대해 무심한 것은 아닐까. 남북교류의 현실적 어려움은 남과 북에 걸쳐 수많은 곳에 도사리고 있겠지만, 필자가 더 답답해 하는 것은 이 답답한 가슴과 머리를 다잡아 줄 가슴 튼 논쟁의 자리도 없을뿐더러 참고할 자료조차 대학생 리포트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통일에 과학기술은 반드시 동참해야 한다. 통일국가의 웅비를 위해 과학기술이 반드시 토대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의 직접적인 수단이 되거나 선악의 양면성을 내포한 과학기술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많은 부분이 진리탐구와 삶의 개선에 그 초점을 두고 있다. 동서독이 통일되기까지 15년간 34차례의 통일협상 과정에서 과학기술과 환경에 관한 협력을 놓치지 않은 것은 이러한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과학기술의 남북교류에 대한 물꼬를 두려움 없이 터야 한다.

 과기부는 2003년 10억원의 남북 과학기술교류협력사업 예산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다 활용하지 못해 2004년에는 5억원으로 축소했다. 작은 연구실 하나의 연구예산에 불과한 부끄러운 액수의 이면에는 적극적으로 교류의 방법과 영역을 찾지 않는 과학기술인 스스로의 문제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민간이나 연구기관이 남북교류의 통로를 홀로 개발하고 천만 다행으로 북측 상대기관의 협력약정을 받아내면, 정부는 이것을 승인만 하는 소극적인 자세가 더 큰 문제다.

 무엇보다 정부차원의 포괄적이고 현실적인 접근 전략을 야무지게 세워야 한다. 최소한 과기부 담당 실무자는 북한을 연례행사처럼 방문해 민간이나 연구기관에서 교류의 의사를 밝히면 북측과의 연결을 위한 기댈 만한 창구가 돼 주어야 한다. 과학기술계도 통일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끈기있게 교류의 문을 두드리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당장 환경, 생명, 생활, 식량, 기초 에너지 관련 협력은 북한이 거부할 이유가 없는 분야다. 당장 협력이 불가능한 분야도 통일을 대비한 청사진은 지금부터 마련해 가야 한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자생식물분야 남북공동연구협력 기반조성사업’에 대한 계획을 비롯해서 다양한 분야가 남북협력의 기반마련을 위한 도전에 나서야 한다. 독립적인 분야로서가 아니라 경제교류 속에 과학기술을 녹여서 물꼬를 트는 방법도 요령이다. 태양열 주택과 같은 주민 생활 개선과 환경을 함께 고려한 과학기술교류도 좋은 소재가 될 수 있고, 몇 년 전 모 시민단체가 소형 풍력발전기를 북한에 보내려던 시도도 좋다. 각 지자체 차원의 남북 과학기술협력도 권장할 만하다.

 무엇보다 정부는 포괄적이고 거시적인 접근의 틀 아래, 업그레이드된 자료의 축적과 실시간 정보의 제공, 실질적인 지원창구의 마련을 위해 실천을 서둘렀으면 한다.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고, 통일된 국가의 국제적 웅비를 꿈꾸고 맛보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한국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이원근 lifegate@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