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이동전화산업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이동전화서비스업체가 휴대폰 제조업을 핵심사업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명확했던 서비스업과 제조업의 경계가 사라진 것이다. 오히려 휴대폰 시장서 순수 제조업체와 제조업체를 거느린 서비스 업체간 경쟁구도가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현재 SK텔레콤과 KTF는 각각 SK텔레텍, KTF테크놀러지스를 휴대폰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다. LG텔레콤은 LG전자와 계열관계다. 이동전화서비스 3사 모두 직·간접적으로 제조업체를 확보한 것이다.
최근에는 SK그룹이 SK텔레텍을 앞세워 국내 우량한 중견·중소업체의 인수에 나섰다. 해외 시장 공략과 사업 다변화 때문이다. SK텔레텍은 CDMA 휴대폰만 개발, 판매하고 있다. 전세계 휴대폰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GSM 진출 전략이 필요했다. 현재 GSM 휴대폰 전문업체인 맥슨텔레콤·벨웨이브 등과 인수 협상을 벌이는 중이다. SK텔레텍은 오는 2007년까지 세계 톱 10 진입을 목표하고 있다.
SK텔레텍 관계자는 “휴대폰 제조는 이동전화서비스와 함께 SK그룹의 핵심 사업”이라며 “내수에 국한된 서비스보다는 해외로 뻗어나갈 수 있는 휴대폰 제조의 성장성이 더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KTF도 휴대폰 제조사업을 강화할 전망이다. 이미 세계 시장 진출을 선언한 이상, 규모를 키울 수밖에 없고 인수합병(M&A)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TF는 지난해 맥슨텔레콤 인수를 추진하기도 했다. LG텔레콤은 계열사인 LG전자의 지원을 받고 있다.
국내 휴대폰 시장의 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현재 국내 시장은 삼성전자의 독주를 LG전자와 팬택&큐리텔이 견제하는 구도다. 대략 삼성전자가 50%, LG전자 25%, 팬택&큐리텔 15%의 시장점유율 확보한 상황이다. 그러나 내년말을 기준으로 SK텔레텍의 판매 제한과 함께 2006년 3월이면 단말기 보조금 지급금지도 풀리게 된다. SK텔레텍은 연간 내수 판매 한도를 120만대로 제한받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00년 5월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의 결합조건으로 SK텔레텍의 공급을 제한했다. 반면 KTF의 관계사인 KTF테크놀러지스는 제한이 전혀 없다.
휴대폰업체들은 긴박해졌다. 당장 고객인 서비스업체와 경쟁을 벌여야 할 판이다. 시장점유율 하락을 막을 뚜렷한 방법이 없다. 휴대폰 제조업체 관계자는 “올해 번호이동성이 도입되자, LG전자가 국내 휴대폰 공급량의 60% 정도를 LG텔레콤에 제공했다”며 “SK텔레텍의 판매 제한이 풀리고 보조금 지급마저 허용되면, 삼성전자마저도 2, 3위로 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서비스업체간 단말기 공급을 추진할 경우, 제조업체들은 무장해제를 당할 수도 있다는 분위기다. SK텔레텍이 KTF에 휴대폰을 공급하는 조건으로, SK텔레콤이 KTF테크놀러지스로 단말기를 구매했다고 치자. 지금은 ‘가능성’ 보다는 ‘설’에 불과한 실정이지만 휴대폰업체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실제 LG텔레콤이 최근 SK텔레텍에 휴대폰 공급을 의뢰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기도 했다.
게다가 유통망도 서비스업체가 쥐고 있다. 안 사면 그만이고 안 팔아도 된다. 유통을 통해 제조업체의 콘트롤이 가능하다. 삼성전자가 자가 유통망을 보유하고 있지만, 유통판매량은 30%에 불과하다. 팬택&큐리텔, 모토로라 등은 아예 유통망도 없다.
모 휴대폰업체 사장은 “서비스업체가 모든 것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서비스업체의 관계사인 휴대폰업체와 순수 제조업체인 휴대폰업체간 정상적인 경쟁이 가능하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서비스업체의 제조 부문 확대가 가시화된 만큼 시장 경쟁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면 뭔가 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익종기자@전자신문, ij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