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LG필립스LCD는 세계 LCD 산업의 양대 산맥이다. 세계 LCD 시장에서 각 사는 20% 안팎의 점유율을 유지하면서 시장을 호령해 왔다. 만약 두 회사가 공조를 한다면 사실상 그것은 전세계 LCD 표준이 된다. 양사가 LCD 사업에 뛰어든 90년대 중반에 두 회사는 동지였다. 선발 업체인 샤프 등 일본 기업들에 맞서기 위해서 양사의 협력은 필수적이었으며 임직원들은 후발업체들의 어려움을 서로 토로하고 위로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양사에는 커다란 벽이 존재하기 시작했다. 최근들어서는 양사 간의 핫라인도 없어진 것 같다. 서로 협력해서 LCD 시장을 함께 주도하자는 비둘기파의 목소리는 매파의 목소리에 묻힌 지 오래다. 이러다 보니 최근에는 양사가 한쪽이 이익을 보면 또 다른 쪽은 손해를 보는 구조로 가고 있다. LG필립스LCD가 6세대 투자를 결정하자 삼성전자는 7세대를 투자하고, 이에 다시 LG필립스LCD는 7세대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투자는 서로 다른 장비를 구매하게 만들고, 서로 다른 사이즈의 TV를 결정해 시장에서 경쟁하게 된다.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기업들은 LG필립스LCD에 납품할 생각을 못하고 LG필립스LCD에 납품하는 기업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대만업체들은 차세대 투자와 관련, 대부분 LG필립스LCD의 규격을 따라갔다. 삼성과 LG규격을 놓고 고민해왔던 대만업체들이 예외없이 LG필립스LCD의 규격을 수용한 것이다. 캐스팅보트를 쥔 대만업체들이 특정기업을 지원함으로써 다른 국내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LG필립스LCD는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에 만난 한 장비업체 사장은 “최근에 대만업체를 방문, 차세대 LCD라인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는 데 라인 구조가 LG필립스LCD라인과 거의 흡사해 깜짝 놀랐다”며 “어쩌면 국내 업체들이 예전과 같은 경쟁력을 가지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가졌다”고 지적했다. 양사는 각기 독특한 장점을 갖고 있지만 아킬레스 건도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서로 협력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양사의 무한 경쟁을 즐기고 있는 것은 어쩌면 대만, 일본 기업일지도 모른다.
유형준기자@전자신문, hjy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