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거의 초인적인 일정을 소화해냈다. 이른 아침 일어난 발머는 10시부터 시작된 ‘2004 마이크로소프트 닷넷 콘퍼런스’에서 약 2000여명의 개발자를 앞에 두고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닷넷의 뛰어남을 웅변했다. 11시부터는 400명 가량의 주요 기업의 전산담당 임원을 초청해 생산성 향상의 지름길을 마이크로소프트가 제공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오후 2시부터는 정통부 장관과 면담을 가졌고 3시부터는 100여 명의 내외신 기자를 대상으로 기자 회견을 열었다. 저녁 8시에는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직원 모두를 모아 직접 격려하는 자상함도 보여줬다. 물론 모든 공식 일정 사이에는 금융, 전자, 통신, 시스템통합 등의 분야 국내 주요 기업의 경영자와 연쇄 회동을 10차례 이상 가졌다. 비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실이지만 열린우리당 몇몇 의원과도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저돌적인 돌파력으로 경쟁 업체를 제거하고 6척 장신의 단단한 체구 때문에 IT 업계의 ’패튼 장군’이라 불리는 그이지만 놀라움 그 자체였다.
스티브 발머 CEO는 매우 적극적인 모습으로 한국 정부 및 주요 기업과의 협력을 부탁했다. 우리 정부의 공개 소프트웨어 도입 정책에 대해서는 공정한 기회를 줘야 한다는 완곡한 비판을 할 정도였다. 지난 2001년 빌 게이츠 회장의 방한과 비교하면 사뭇 다른 양상이다. 보다 여러 행사에 참석하고 훨씬 더 많은 국내 인사를 만났으며 이 모든 일정에서 우리 정부 인사와 업계 관계자들은 동등한 입장을 견지했다. 이는 당연하다. 세계 IT 업계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영향력은 대단하지만 우리는 중요한 고객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공개 소프트웨어 도입 정책은 MS를 압박할 수 있는 히든카드다.
이제 마이크로소프트 CEO를 만나기 위해 국내 기업의 주요 인사가 줄을 서는 촌극은 사라졌다. 앞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발전적인 협력 관계를 맺는 일만 남았다. 우리나라에 이익을 준다면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상관없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고양이인 셈이다.
장동준기자@전자신문, dj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