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위피 표준화 전략

지난 2000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무선인터넷 서비스가 올해로 4년째를 맞이했다. 짧은 기간 고속 성장을 한 무선인터넷 산업은 연간 시장 규모가 1조9000억원대에 이를 정도로 놀랄 만한 성과를 이루었고, 한국은 세계 무선인터넷 산업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속 성장의 이면에 감춰졌던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표면화되기 시작하면서 관련 업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은 바로 국내 무선인터넷 표준으로 채택된 위피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무선인터넷 플랫폼 표준화를 추진했던 최초의 목적은 콘텐츠 중복개발을 방지해 콘텐츠 산업의 발전을 촉진하고, 순수 국내 기술로 토종 솔루션을 개발해 해외로 유출되는 로열티를 막고자함이었다. 그러나 위피 개발시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자바 관련 지적재산권과 기술 로열티 부분을 사전에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선의 자바를 규격에 포함시켰고, 이에 선에 자바 기술 사용료를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렇듯 ‘위피’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을 보면, 정부의 위피 표준화 취지가 퇴색했음을 알 수 있다. 한술 더 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최근 위피 표준에 선마이크로시스템스에 이어 마이크로소프트(MS)까지 끌어들이겠다고 언급한 것은 정부가 앞장서서 외국기업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인상마저 준다. 100% 순수 토종 기술 개발이 물건너갔다면 이제라도 로열티 지출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국산 기술 비중을 높이는 정책을 내놓아야 하는 판에 어떻게 정부가 앞장서서 외국기업을 끌어들이겠다는 발상을 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만약 MS까지 위피 개발에 참여하게 된다면 해외에 지불하는 로열티 규모가 더욱 커질 게 뻔하다.

 선의 로열티 정책에 대해 정부도 기업도 너무 안이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선의 슈워츠 사장이 최근 국내 언론에 ‘로열티 최소 수준’만을 언급하고 구체적인 액수나 지급조건에 대해선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해 그 의미를 되짚어봐야 한다.

 로열티는 늘 코가 완벽하게 꿰였을 때, 즉 다른 대안이 없을 때가 문제다. ‘최소 수준’ 언급은 ‘선 시장장악 후 특허료 인상’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논리에 기초를 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허료는 미미할 것이기 때문에 대세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강변하는 정부의 설명을 들으면 순진한 건지, 아니면 애써 모르는 척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위피와 관련해 지금 중요한 것은 정부와 출연연구소, 민간기업이 3년여 간 100억원이 넘는 비용을 투입하여 진행해온 국가표준에 대해 로열티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세계시장에 수출할 수 있는 글로벌 버전으로 상용화시키는 일이다.

 이를 위해선 세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상용화에 성공하더라도 천문학적인 로열티가 해외로 유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고, 둘째 로열티 문제를 해결했더라도 해외 시장에선 통하지 않는 ‘우물안 개구리형 표준’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위피가 세계시장을 누비더라도 해외 원천기술 제공업체들 배만 부르게 해주고, 국내 업체들은 ‘재주만 부리는 곰’으로 전락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위피 수수께끼를 푸는 해답은 이 세가지를 놓고 생각하면 자연스레 나온다. 첫째 기술종속 및 로열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위피 기반 국산 솔루션을 활성화하여 외국기술과 상호 경쟁,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향후 위피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업계 관계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표준화 위원회의 문호를 적극 개방해야 한다. 수많은 솔루션 업체와 컨텐츠 업체들이 참여하는 표준화 위원회가 정착될 때 위피가 한국형 무선 표준 플랫폼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정부는 관련업체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룰만 제공하고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위피와 관련해 정부당국자들은 호환성과 중복개발의 문제를 자주 언급하며 정부가 반드시 개입해야 하는 것처럼 얘기하곤 한다. 제대로 호환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똑같이 개발하라는 말은 언뜻 보면 설득력 있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기능이나 호환성 등은 업체 간의 경쟁을 통해 시장에서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며, 정부는 핵심적인 요소만 표준으로 정해놓고, 나머지는 시장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양선 서경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yslee@skuniv.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