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한 연구는 단순히 상상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기술이 지금도 점차 빠른 속도로 발전되고 있고 이러한 기술의 변화는 직간접적으로 개인과 사회의 모습에 다양한 변화를 초래한다. 지난 십여 년간 우리는 상당한 기술 발전을 통해 이미 여러가지 변화된 사회현상을 경험했다. 특히 정보통신(IT)기술에 있어서 어느 정도 우선순위를 점하는 데 성공한 우리나라는 개인 생활에도 인터넷, 무선통신 등으로 대표되는 IT기술이 깊숙이 개입해 다른 나라들보다 큰 영향력을 경험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이러한 기술적 우위는 계획됐다기보다는 즉시 대응적인 측면이 많았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당시로서는 과잉 투자일 수밖에 없는 정부의 통신망 투자나 민간 기업의 반도체 투자 등이 궁극적으로 기술적 우위로 이어지며 세계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경쟁적 우위를 이끌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경쟁적 우위는 처음 만드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 게다가 빠른 기술의 변화는 IT기술에서 생명공학, 나노공학 등으로 확대돼 오늘의 특정 기술분야에서의 우위가 내일로 지속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물론 정부에서도 이러한 분야들에 대해 중요성을 인식해 많은 예산을 할당, 대비하고 있으나 현재 이와 같은 투자는 대부분 기술개발 그 자체에만 무게가 실려 있다. 인식론 학자며 미래학자인 도널드 노먼은 “미래 기술에 대해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이로 인한 사회적 영향을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이는 기술 예측에 선행해 미래의 사회적 변화상을 예측한 후 이에 근거해 기술 개발의 방향을 잡아야 성공적인 로드맵을 구성할 수 있다는 표현이다. 이는 또한 이러한 사회적 변화 예측을 통해 특정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부정적 결과도 미리 예견함으로써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기술 발전 선회를 이끄는 것까지 포함된다.
선진국들은 이와 같은 기술의 사회적 영향을 중시해 이에 대한 많은 연구개발을 아끼지 않는다. 이러한 투자는 정부단위에서는 물론, 주요한 기술개발의 주된 역할을 하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이에 반해 국내에는 장기 기술계획에 대한 범경제적, 또는 범사회적 비전의 투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산업분야별 또는 정부부처별로 작성되고 있는 5년 내지 10년 계획서들을 보면 특정 분야의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계획의 나열에 그쳐 분야간의 조화나 중복제거, 통합이 이루어진 전반적인 사회변화에의 대비계획은 관찰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정보통신부의 IT839 계획을 보면 8대 서비스, 3대 인프라, 9대 신성장동력 기술로 앞으로의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나 수많은 기술 중 각 항목들이 선택된 이유를 파악할 수 없고, 따로 떼어놓고 보면 어느 쪽이 서비스인지 신성장동력 기술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게다가 선진국들에서 관찰되는 나노기술, 생명공학 등과의 연계에 의한 기술개발 계획은 특별히 없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장기적으로 고부가가치를 형성하는 소프트웨어나 디지털 콘텐츠는 임베디드, 게임, 교육 등 분야가 지극히 제한돼 있어 IT839 계획을 보고 있노라면 ‘차세대에도 우리는 새로운 제조업으로 생존하다가 그 기술이 일반화되면 또다시 가격경쟁 속에서 인건비를 이기기 힘들어 회사마다 공장은 중국 등으로 옮기고 새로운 기술을 찾아 나서야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미래의 기술분야에 의해서 형성 가능한 2020년 한국 사회의 모습을 먼저 예측해 봐야 할 것 같다. 개연성이 높은 몇 개의 사회현상 시나리오를 만들고 이들을 시뮬레이션하고 실험도 하고 다양한 의견수렴도 해 보면서 국가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제품 및 서비스 분야를 챙기고, 이 때 가장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요소기술들을 추려내 해당 부처들의 협력과 연대 속에서 전문성 있는 집단을 확보, 각종 사업을 추진하는 순서가 돼야 할 듯싶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가시적으로 보이는 설득력이 있어야 기업도 스스로 판단하고 투자 계획을 세울 수 있고 대학도 인력수급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여타 여러 나라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소득 1만달러는 국민 대다수가 열심히 자기 일만 해내면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러나 2만달러 수준을 얘기할 때는 많은 것이 달라진다. 고부가가치, 조직 탄력성, 사회 투명성, 환경 영향 고려, 다양한 이해관계자 부상, 사회 안정성, 국제관계, 정부 역할의 변화 등 다 나열하기 힘들다. 다행히 과학기술부의 부총리급 격상으로 과학기술의 계획과 조율, 협력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를 통해 5년, 10년 후 우리나라의 위상이 조립품 제조국이기보다는 흔들리지 않는 핵심역량을 자랑하는 고부가가치 창출 국가로 한 걸음 다가가 있길 바란다.
◆김병초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bckim@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