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IT강국 코리아’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 스스로 IT인프라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하다.
세계수준의 통신 인프라에 대한 자부심과 이를 바탕으로 한 관련 산업들의 비약적인 성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는 우리나라의 통신인프라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세계 통신장비의 ‘테스트 베드’임을 자타가 공인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명성과 긍지가 얼마나 갈 수 있을 지 최근의 현실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정부의 장기적 안목의 부재와 관련 기업들의 현실 안주적인 투자 부족, 산업의 흐름상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냐는 안일한 시각들이 전체적으로는 우리나라 IT산업 경쟁력을 후퇴시키고 있다.
특히 일본은 그동안 절치부심하며 통신 인프라 구축에 매진한 결과 이제 모든 통신환경에서 우리나라를 앞서가고 있다. 90년대 우리나라가 일본의 통신환경을 앞서가던 상황이 그대로 역전되어 재연되고 있다.
현재의 투자가 3∼5년 후 IT산업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것을 감안해 볼 때 어렵게 이룩한 IT강국의 프리미엄을 고스란히 일본에 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본의 경우, 유선과 무선 전 통신인프라에서 이미 우리나라보다 한 발 앞서있다.
일본의 VDSL시장은 이제 본격적인 100Mbps를 예고하고 있다. ADSL에서는 우리나라에 한발 뒤처졌지만 VDLS에서는 이미 우리나라를 앞서가고 있는 것이다. FTTH 분야에서는 이미 우리나라와 일본의 격차는 이미 추월 자체가 요원할 정도다. 일본은 FTTH 가입자가 이미 100만명을 넘어섰으며, 2006년까지 6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무선통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일본과 유럽을 중심으로 3세대 이동통신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순수 가입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3세대 휴대폰을 비롯해서 관련 장비의 개발도 거북이 걸음이다. 올해 초 나올 것이라던 단말기의 새 모델도 하반기로 연기됐다. 그 사이 일본과 유럽이 3세대 무선통신 시장에서 우위를 보이며 시장을 주도해 나가기 시작했다. NTT도코모의 WCDMA 가입자수는 지난 3월에 300만명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휴대폰이 3세대 시장에서도 명성을 이어갈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일본뿐만이 아니다. 현재 전 산업에서 우리나라를 추격하고 있는 중국 역시 우리나라 통신강국의 입지를 좁히는 위협적인 존재로 훌쩍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말 중국은 전세계 DSL 최대 가입자수를 보유한 국가로 성장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기업들의 태도는 답답하기만 하다. 기업은 당장의 수익에 급급해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투자 비율을 점점 줄이고 있다. 정부 역시 통신산업에 대한 정확한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하고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 의욕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장비 업체들은 기술투자보다는 저가경쟁으로 인한 생존의 문제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국내 통신장비 중소기업들이 어렵게 신제품을 개발한다 하더라도 통신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없는 한 국내시장 자체를 기대할 수 없다. 국내에서 상용화하지 못한 제품으로 해외 진출한다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통신인프라로는 ‘테스트 베드’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힘든 상황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국내 인프라가 현재상태로 답보한다면 국내 통신장비사들이 해외시장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고 지금까지의 IT강국 프리미엄 없이 그야말로 힘겨운 경쟁을 해야만 하는 처지가 될 것이다.
현재로서도 충분하다는 안일한 생각이 불과 3∼5년 후에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이는 정부와 사업자, 그리고 기업 모두가 함께 노력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제부터라도 미래지향적인 사고로 지금의 IT강국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한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명곤 우전시스텍 사장 leemg@woojy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