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글로벌화되면서 우리나라 주요 기업의 경우 전체 주식의 절반 이상을 외국인들이 소유하고 있다. 이들 외국인은 국내 기업에 투자할 때 미래 가치, 이익, 성장성 등 많은 요인들을 고려하지만, 무엇보다 기업의 투명성과 경영 윤리를 가장 중요한 투자 지표로 간주하고 있다. 이처럼 외국인들에게까지 이미 지분이 개방, 분산되어 있는 구조 하에서는 기업의 투명성과 경영 윤리의식의 제고가 기업 경쟁력 향상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투명성이 없는 기업은 법적인 제재 이전에 직원, 협력사, 그리고 주주들로부터 외면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업의 투명성과 경영윤리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지켜나갈 것인가. 요즘 국내 기업에서도 이와 관련한 움직임과 선언이 많다. 그러나 투명성과 경영 윤리는 단순히 일회성 선포와 홍보로써 성취 가능한 것이 아니다. 기업의 문화적인 토양과 제도가 튼튼하게 뒷받침해 줘야만 한다. 예를 들면 투명 경영 실천 기구의 설립, 사외 이사 제도의 활성화, 소액주주의 권한 강화 등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시행할 때 비로소 그 기업은 시장의 높은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투명성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흔히 투명성하면 구매나 회계 부문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범위는 인사나 고객 지원, 그리고 각종 사내 제도에까지 폭 넓게 확대돼야 한다. 개인에 대한 평가, 승진 등이 투명하지 못하면 직원들로부터 진정한 신뢰를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제도적으로도 직원 개개인이 투명성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윤리 경영 지침이 있어야 하며, 이에 대한 정기적인 교육이 시행돼야만 한다.
기업 투명성 제고를 위한 ‘조직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참여’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개인 차원의 투명성과 윤리성을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까. 답은 ‘자발적인 참여’다. 이를 위해서는 리더십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국내 어느 그룹의 한 CEO는 자신의 일정표를 인터넷에 올려 업무의 투명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약간 극단적일지는 몰라도 개인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리더의 자세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본다.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글로벌 시대로 나 혼자서 독점하기보다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시대다. 지난 20세기 풍미했던 게 제로 섬(Zero Sum)의 논리라면 21세기는 포저티브 섬(Positive Sum)의 시대다. 서로 도와줄 때 더 많은 이익이 창출되며 파이 사이즈 자체가 커지는 시대다. 선의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 시장을 확대하고 파이를 키우는 ‘상생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생의 시대에는 고객, 내부 직원, 협력사에 투명한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며 그렇지 못한 기업은 도태돼 사라질 것이다.
경제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정부, 기업, 시민이 각각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투명성의 수준과 기대치가 종종 다름을 볼 수 있다. 특히 상대방에 대해 높은 수준의 윤리관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본인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게 사실이다. 이처럼 다른 투명성의 수준이 이제 IT라는 수단에 의해 좋은 방향으로 비슷해지고 있다. 전자정부는 행정의 투명성을 제공하고 있으며, B2B는 기업 간 거래의 투명성을, G2C/B2C는 시민 소비자와의 거래에 투명성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혁명이 가져온 디지털사회로의 변화 덕분에 투명성에 대한 사회적 가치의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동시에 우리 사회의 투명성에 대한 기대 수준 역시 높아가고 있다. 이렇듯 성숙해지고 있는 환경 속에서, 투명성에 대한 기대치에 사회적 합의가 다시 한 번 필요한 때다. 물에는 쉬리만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최준근 한국HP 대표이사 joon-keun.choi@h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