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남북 IT교류와 대학의 몫

숭실대학은 북한에 대해 남다른 감회와 정서를 가질 수밖에 없다. 최초의 학교 설립지가 바로 평양이기 때문이다. 평양에 있었던 유일한 대학이 지금 서울로 옮겨 온 것이다. 평양에 있는 김일성 종합대학 등 적지 않은 대학들은 8·15 해방 뒤에 새로 생겨난 것이다.

 1897년,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의 복음화와 선진 교육을 위해 설립한 것이 숭실대학이다. 농경이 중심이었던 당시에 숭실대학교는 한국의 첫 대학이었다. 숭실대학은 1920년대에 이미 농과를 개설하고 문과와 함께 이과 교육을 실시한 유일한 대학이기도 하다. 오늘의 숭실대학이 IT분야에서 선두주자와 개척자적 위치에 있게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당시의 우리나라 대학이나 전문학교는 문과, 법과, 상과가 고작이었다. 그런 시절에 요즘의 산학협력 체제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농공 기계창 등을 대학에 설치해 이공계 교육의 내실화에 힘썼던 것은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본다.

 평양의 숭실이 농경시대에 산업화를 지향했다면, 서울의 숭실은 산업화시대에 한국 정보화 교육의 선두에 섰다. 최초의 컴퓨터 도입과 정보과학대학의 설립 등이 그것이다. 또한 질과 양 모든 면에서 정보화 교육의 최고를 지향하는 숭실대학은 그런 의미에서 평양 숭실을 낳았던 북한의 현대화와 한반도의 통일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서울 숭실도 어느덧 50년을 헤아리게 되었다. 내년이면 분단의 역사도 환갑을 맞게 된다. 기독교 대학인 숭실대학은 구조적으로 공산주의 사회에서 뿌리내리기가 어렵다. 1938년에 일본제국주의의 신사참배 강요를 끝까지 반대하다가 폐교되었던 숭실대학은 해방과 더불어 당연히 평양에 다시 세워져야 했지만 공산정권의 수립으로 그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한반도 통일의 관건은 체제의 극복이다. 어느 한쪽에 의한 흡수통일은 남쪽에서도 부정하고 있거니와, 북쪽에서도 펄펄 뛰고 있다. 그러면서 남북한은 무력 통일이 아닌 평화 통일을 공언하고 있다. 낮은 단계든 높은 단계든 연방정부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다 이런 맥락에서다. 언뜻 북한은 그들의 체제수호에 역량을 집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은 물론 서방 나라들도 개혁·개방을 기대하고 있지만, 개혁과 개방을 동시에 할 수 없는 것이 북한의 딜레마다. 북한의 핵 전략도 체제수호와 직결되어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방을 가능한 한 억제하는 상황에서 경제개발이란 실리를 추구하려는 북한측의 개혁 정책들이 요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중국의 모델도 있고, 한국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싸우면서 건설’하는 방식도 북한의 구미를 돋우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으나, 둘 다 쉬운 선택은 아니다.

 북한은 북한 나름대로 선호하는 체제가 있을 것이다. 단순한 선호 수준이 아니고, 그것은 북한 체제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문제일 수 있다. 선택에 따라 체제를 지키느냐, 붕괴시키느냐로 갈리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동유럽권의 몰락과 이들 국가의 서방 지향적 성향은 북한의 체제수호에 대한 집념을 심화시켰을 것이다. 소비에트 연방 체제의 붕괴와 분열도 세습체제인 북한에 있어서는 중요한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이러한 고민과 고심의 핵심에 오늘의 북한 지도층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용천 폭발 사건 직후 북한의 적나라한 모습들이 서방 언론에 잠시 비춰졌던 적이 있다. 열악한 건설 환경과 의료 현실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그런 현실과 핵 개발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모순을 안고 북한의 개혁정책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전망도 그리 투명하지만은 않다. 여기에 개성공단 문제 등이 얽혀 있다. 정보과학 분야에서 북한 대학과의 연계를 어떤 형태로든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지금은 어려움이 많지만, 남북 교류가 정상궤도에 진입할 시기가 되면 북한의 개혁정책 개발에 일조하는 숭실의 역할도 증대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중 숭실대 총장 joong@ss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