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V 전송방식이 미국식인 ATSC로 결정난 가운데 이번엔 지상파 디지털방송의 케이블 재전송시 변조방식을 둘러싼 논쟁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상파 디지털방송의 케이블 재전송은 그동안 이른바 ‘바이패스’ 방식을 채택해왔다. 바이패스란 지상파 디지털방송 신호를 그대로 실어 케이블망에서 전송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지상파와 케이블이 모두 RF변조 방식을 채택, 서로 충돌 없이 재전송이 가능했다. 하지만 디지털방송에서는 지상파가 ATSC-8VSB 변조방식, 케이블이 QAM 변조방식을 각각 사용키로 해 재전송을 8VSB로 할지, QAM으로 바꿔보낼지가 논쟁거리로 부상했다.
◇현황=현재 전파를 타고 있는 지상파 디지털방송은 KBS1·2, MBC, SBS, EBS 등 5개 채널(수도권 기준)이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은 이 5개 채널을 지상파 변조방식인 8VSB 그대로 실어보내고 있다. 즉 기존 아날로그 케이블방송 주파수인 52M∼552MHz를 통해 기존 아날로그 방송을 보내고 552M∼750MHz(망 업그레이드 지역은 860MHz까지 가능)에서 디지털방송을 전송한다. 채널당 6MHz씩 묶어 총 30MHz를 사용한다. 문제는 SO들도 디지털방송 전환을 속속 준비해 케이블 디지털방송 주파수가 부족하다는 점.
케이블TV방송협회의 한상혁 차장은 “디지털 케이블방송에서는 기존 디지털방송채널 외에도 VOD방송, 데이터방송 등 수많은 부가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어 주파수 자원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특히 최소 오는 2010년까지 아날로그도 같이 보내야 해 추가 확보할 수 있는 대역이 한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케이블업계, “QAM 재변조”=채널수의 확보 차원에서 QAM 재변조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관계자는 “오는 2006년 256QAM이 가능해질 경우 지금처럼 바이패스로는 5개 채널만 쓰는 30MHz 대역에서 15개 SD급 디지털채널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SO 일각에서는 ‘(지상파방송사가) 바이패스를 주장한다면 지상파 디지털방송의 재전송을 중단할 수 있다’는 강경론마저 제기되고 있다. 현재 법률 상에서는 SO의 지상파방송 재전송 의무가 지상파 디지털방송까지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SO의 디지털 전환을 진행하면 할수록 이런 강경론이 힘을 얻을 개연성이 존재한다.
◇지상파방송사간 입장차 “미묘”=KBS, MBC, SBS가 조금씩 다른 입장을 취한다. KBS측은 “원소스를 케이블에서 변경하게 될 경우 방송 지체현상이나 방송이 안 나가는 사고 가능성이 높아질 우려가 있다”며 바이패스의 유지를 지지했다. KBS의 한 관계자는 “또 지상파 데이터방송의 수신에러 가능성이 높아지는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비해 MBC의 관계자는 “데이터방송의 재전송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케이블측이 지상파의 8VSB를 QAM으로 재변조하는 부분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8VSB를 QAM으로 바꾸는 데 기술적인 문제는 없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SBS의 원종화 부국장은 회사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바이패스를 유지하는 게 낫긴 하지만 케이블측이 재변조를 주장하면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과제와 전망=일단 지상파와 케이블업계의 세 싸움에선 케이블쪽이 유리할 전망이다. 케이블업계가 ‘QAM 재변조’에 대한 지상파방송의 우려를 씻어내줄 경우 협상력을 제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데이터방송의 경우에도 ACAP과 OCAP간 호환 확보가 (시기의 문제는 있겠지만)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작 변수는 케이블업계와 가전업체간 협상 여하에 달려 있다.
케이블TV방송협회 한상혁 차장은 “지상파 디지털방송의 케이블 재전송 문제에는 QAM 변조 신호를 받을 수 있는 셋톱과 이를 수용하는 1394 인터페이스를 갖춘 DTV 개발·보급 문제가 걸려 있다”며 “가전사는 아직 지상파 8VSB만을 받는 셋톱을 보급하고 있으며 DTV도 1394 인터페이스를 안 갖췄다”고 지적했다. 업계는 8VSB 전용셋톱(이른바 지상파셋톱)이 70만∼80만대 보급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만약 ‘바이패스’가 중지될 경우 지상파 디지털방송을 직접 수신 못 하는 지역에선 쓸모 없는 ‘천덕꾸러기’가 될 전망이다. 바이패스 해결이 늦어질수록 이 같은 문제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정통부의 한 관계자는 “이 문제는 결국 케이블 레디 TV에 대한 논의와 맞닿아 있다”며 “이달 중 이 문제와 관련된 당사자들이 모여 협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성호철기자@전자신문, hc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