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 칼럼]기업인에 자긍심을

 가히 경제위기라고 할만 하다. 모두 지금의 경제상황이 나쁘다고 말한다. 경제정책의 수장도 경제상황이 안 좋다고 인정한다.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설령 그렇다 해도 낙관론을 펴는 게 그간의 관행이었다. 사장이 기업이 어렵다고 외부인에게 “회사가 경영난으로 부도 직전이다”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또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방증일 수 있다. 기업인의 위기의식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루 넘기기가 정말 힘들다. 기업을 정리해야겠다.” 밖에서 만나는 기업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경제상황이 나쁘다는 게 엉뚱한 말은 아니다. 우리의 수출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데 내수는 밑바닥이다. 고임금에다 노사갈등·내수침체·고유가·원부자재난·인력난 등이 한데 묶여 돌아간다. 제조업의 해외이전도 여전하다. 어디 기댈만한 곳이 하나도 없다. 현실이 이런데도 경제상황이 좋다고 한다면 기만이다.

 수출이 잘 된다는 데 무슨 생뚱맞은 말이냐고 할지 모른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잘나가는 기업은 있다. 문제는 대기업 몇 개라는 점이다. 품목도 반도체·휴대폰·자동차·가전 등 한정돼 있다. 이들이 우리 수출을 주도한다. 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매출부진에 허덕인다. 그게 현실이다.

 경영난의 충격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심하다. 특히 중소기업은 거의 빈사상태라고 한다. 흔히 중소기업은 산업의 뿌리라고 말한다. 그 뿌리가 제 기능을 못한다면 경제가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대기업이 기침하면 중소기업은 독감을 앓는다. 하지만 뿌리가 튼튼해야 나무가 잘자란다. 중소기업이 무너지면 대기업도 무너진다.

 우리의 중소기업은 전체 제조업의 98%를 차지한다. 인력은 전체의 86%선이다. 이런 중소기업의 공장 가동률은 68% 정도다. 기술의 사업화는 35%에 불과하다. 박사급 연구인력 비율은 5%대다. 덩치는 크지만 모든 게 부실하다. 그나마 중소기업의 버팀목이 됐던 내수는 지금 아예 얼어붙었다. 이러니 중소기업들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전할 수밖에 없다.

 13일 국회의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모처럼 중소기업 육성책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열린우리당 채수삼 의원은 “핵심부품과 소재 생산 등 중소기업 육성대책을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앞서 노무현 대통령도 7일 제5차 경제민생점검회의에서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대책’을 집중 논의하고 실천에 차질이 없도로 하라고 당부한 바 있다.

 이제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특별 대책이 나와야 한다. 시간을 끌 일이 아니다. 지름길을 찾아야 한다. 기업인이란 돈벌이가 목적이다. 돈벌이가 안 된다는 데 기업하라고 권할 수 없다. 땜질식 정책만으로 이들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 우선은 중소기업이 숨을 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품소재 등에 대한 소득세 면제나 기술지원 등을 해야 한다. 대기업의 우윌적 거래관행을 개선하고 정책의 일관성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인에게 자긍심을 갖게 하는 일이다. 일할 맛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잘되면 그 나라의 경제는 걱정 안해도 된다고 한다. 중소기업인의 지친 모습, 좌절하는 기업인의 모습은 한국 경제의 후퇴다. 중소기업인, 아니 모든 기업인에게 자긍심을 갖게 할 사람은 누구인가.

 이현덕주간@전자신문, hd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