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협상력은 고사하고 가격을 흥정에 붙일 능력도 없습니다.”
최근 만난 한 반도체 후공정업체 임원은 반도체 패키징 기판 등에 쓰이는 필름 소재와 관련, 국내 업체들의 입장을 이렇게 표현했다.
핵심 소재를 전부 일본 등 외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데다 최근 생산이 급증하면서 재료 공급 부족 사태가 발생, 가격을 흥정에 붙일 수 있는 여지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국내 업체들이 CoF(Chip on Film), TCP(Tape Carrier Packaging) 등에 쓰이는 기판의 국산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이들 제품의 원소재 필름은 고스란히 수입하고 있다. 더 파고들어가면 이들 원소재의 원료가 되는 폴리이미드 필름 등도 전부 수입이다.
이들 핵심 원재료는 일본·미국의 극소수업체들만이 생산한다. 수요는 많고 생산은 달리니 제품은 부르는게 값이 된다. 생산은 호황을 보이나 그 명운을 해외 소재 업체들이 쥐고 있는 익숙한 장면이 다시 펼쳐진다.
물론 제품 생산 단계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 모든 소재를 다 국산화하는 것은 오히려 비효율적인 일이 될 수 있다. 생산 능력이 커지면서 국내 업체들은 이미 무시할 수 없는 ‘큰 손님’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핵심 소재 분야를 전적으로 외국업체들에 의존한다면 협상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해외업체들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는 기술력 혹은 다변화된 공급선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최근 소재 산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국내업체들의 연구개발이 활발해지고 있다. 국산화 노력도 커지고 있다. 국산 제품의 등장은 높게 책정된 수입품 가격을 떨어뜨리며 가격 구조를 합리화하고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돼야 함은 물론이다. “원자재가 인상, 대기업의 가격 후려치기에 시달린다”는 중소기업인들의 ‘단골’ 불만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바로 그 곳에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산업부·한세희기자@전자신문, h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