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논쟁만 거듭하던 디지털TV(DTV) 표준 문제가 우여곡절 끝에 종결되었다. 늦긴 했지만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니다. 3∼4년 간의 논쟁이 생산적이기보다 소비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무 소득 없이 DTV 보급이 늦춰졌고 DTV산업 경쟁력 약화만 초래했기 때문이다. CDMA 이후 IT 분야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디지털 방송이다. DTV는 시청자를 정보수용자에서 정보 창조자로 변모시키는 능동적인 정보화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따라서 방송 수신에만 머물지 않고 양방향 정보교환을 가능케 하는 DTV는 단연 ‘디지털 기기의 꽃’이다.
ETRI는 DTV 서비스 일정에 맞춰 기술개발에 매진, 현재 세계 DTV 관련 원천특허의 33%를 점유하고 있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술적 우위가 이번 표준 논란으로 인한 서비스 지연으로 빛이 바래진 면도 적지 않다. 2000년 이후 유럽식(DVB-T)과 미국식(ATSC)을 놓고 전개된 논란은 DMB와 DVB-H 등 이동TV 표준으로까지 확대되었고, 끝내 작년 12월에 광역시권으로 DTV 방송을 확대하려던 계획마저 올 8월로 잠정 연기되었다. 광역권 국민은 DTV 서비스 혜택에서 배제당해 왔다. 산업적 측면에서는 DTV 수상기 내수가 위축되었고 해외에서도 경쟁력이 약화되었다. 또한 방송사들의 DTV망 투자 지연으로 디지털 전송장비 제작업체들이 심각한 경영난에 부딪혔다.
논란이 종식된 지금, 그 간의 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DTV 서비스 및 산업의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계기로 DTV 수상기 보급을 확산시켜 침체된 내수 경기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또한 지상파 DMB 사업자를 하루 빨리 선정해 DMB 서비스 제공일정을 앞당겨야 한다. DMB 서비스의 성공은 해당 산업의 해외시장 진출에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디지털 전환’ 바람을 타고 세계 TV 시장은 교체수요로 인해 빅뱅 현상이 일고 있어, 오는 2008년에는 세계 시장 규모가 연 480억달러 수준으로 팽창한 것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전후방 관련 산업에 대한 수요를 촉발해 국가 산업수준을 고도화시키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디지털 방송 서비스 및 산업 활성화를 통해 우리나라는 2008년까지 5년 간 생산 236조원, 연 134만명의 고용 효과, 수출 570억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경제적 파급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과거 아날로그 TV의 경우 우리는 시장진입이 늦은 바람에 일본, 유럽 등의 선진 상품에 비해 브랜드 인지도가 낮았다. 그러나 DTV는 한발 앞선 기술과 생산력을 이용하면 브랜드 인지도 제고는 물론, 고가품 시장진입 등 질적인 성장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이나 일본의 경우 기술경제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시기마다 새로운 기술로 완벽한 준비를 해 선진국으로 진입했다. 우리나라도 현재의 디지털 전환기를 절호의 성장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ETRI는 주파수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전파자원 이용·관리기술, 새로운 주파수대역 발굴을 위한 밀리미터파 이용기술, 전자기장 영향·전자파 장해(EMI/EMC) 연구 등을 수행하고 있다. 재난극복에 필수적인 광대역 무선통신기술을 포함해 향후 정보통신서비스 발전 과정상 필수기술인 3차원 입체 AV 기반기술 개발에도 노력하고 있다. 이런 기술 개발은 ‘IT 839 전략’ 추진과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강력한 추진력이 될 것이다.
앞으로는 기술문제를 결정하는 데 ‘토론만을 위한 토론’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DTV 표준 문제는 우리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큰 대가를 치른 교훈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임주환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 chyim@et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