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006년 도입 예정인 생체여권(e패스포트) 시스템이 아직 기술적으로 검증되지 않은데다 유럽연합(EU) 등 국가와의 협의도 불충분해 도입에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EE타임즈에 따르면 최근 미국 국토안보부가 오는 27일부터 29일까지 실시하기로 한 생체여권 테스트에 대해 시스템 공급업체들과 비자 협정 체결국가들이 시스템 검증 미흡 등을 이유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만간 웨스트버지니아에서 열릴 예정인 회담에서 핵심 이슈는 미국과 비자면제 협정이 체결된 27개 국가가 1년 남짓한 기간동안 생체정보 인식이 가능한 여권을 도입할 수 있느냐의 여부로 모아지고 있다. 이미 올해 10월 26일이던 최초 시한이 1년간 1차 연기되고, 이후 2006년 11월로 재차 연기된 생체여권 도입 시한은 유럽의 여러 국가와 일본, 싱가포르, 호주, 뉴질랜드 등 비자 면제국으로부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받은 상태다.
게다가 생체정보 인식여권 도입의 최종 시한은 아직 미국 상원의 추인을 받지 못한 상태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의회에서 “시한을 맞추기 위해 서두르는 것은 불완전한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소신을 피력했다.
생체정보를 연구하는 인터내셔널 바이오메트릭 그룹의 조셉 킴 컨설턴트도 “국제 기술규격을 정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가 생체 여권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 과신하는 현상을 9.11사태 이후 생체 과학을 신봉하는 풍조에 의해 조장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이 전자여권에 대해 과신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장비 공급업체들 역시 시스템 공급권을 겨냥해 시스템 운영상 문제점을 지적하기 보다는 자사의 장비가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어떤 생체정보 인식장비도 실제 테스트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ST마이크로닉스의 안드레아스 래슈미어 매니저는 “실제 실험을 거치지 않고서는 생체인식 기술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는지 파악하기 힘들다”고 지적하고 있다.
생체정보 인식 여권 도입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인 태도 역시 EU 등 비자 협정 체결국가들의 불만을 야기하고 있다. 비자 면제협정이 체결된 27개 국가 중 20개에 해당하는 유럽 국가들이 올해 말까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기준을 준수하기로 한 상태다. 하지만 ICAO의 기준은 실제 테스트 작업이 이뤄지지않은채 마련된 것이어서 칩과 판독기, 여권 등에 기록될 정보에 대한 불신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유럽 지역 국가들이 미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따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인피니온의 데틀레프 허도 이사도 “미국의 생체여권 도입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선 별도의 합의가 필요하다”며 미국의 일방적인 태도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권건호기자@전자신문, wingh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