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 콘텐츠 산업 제값받아야 산다](1)소프트웨어산업 답습하면 망한다

 콘텐츠산업이 미래산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여러 단계의 왜곡된 유통과정과 ‘헐값’이라는 딱지를 못 떼고 있다. 80년대 이후 소프트웨어산업이 걸어온 길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대다수 기업들은 미래보다는 현실에 급급하다. 콘텐츠 상품의 제값을 받지 못하면 개발자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산업이 크기도 전에 가라앉고 만다. 콘텐츠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제값’부터 받아야 한다. 이에 콘텐츠산업의 현실을 되짚어 보고 발전을 향한 건강한 제언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콘텐츠는 공짜다’라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콘텐츠업체들이 발 붙일 땅은 없습니다. 여기에 왜곡된 유통구조까지 가세해 콘텐츠산업이 미래산업이라는 말은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O업체 ㄱ사장은 목소리를 높인다.

 “더는 교육용 게임으로 승부를 낼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사회공헌 차원에서 시작했지만 밥먹고 살기가 어려워 방향전환이 불가피합니다.” 교육게임업체 P사장의 푸념이다.

 영세한 콘텐츠업체들이 아우성이다. 문화산업의 주춧돌인 콘텐츠업체들이 기아상태에서 허덕이고 있다. 문화관광부가 이들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진행하는 ‘스타 프로젝트’의 한 심사위원은 실사 후 혀를 내둘렀다.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평균연봉이 1000만원도 안 되는 인력이 대부분이다. 미래산업이라고 추켜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3D업종이다.”

 ‘콘텐츠=미래산업’이라는 등식은 현실에서 성립되지 못한다. 당장 생존을 위해 어떠한 일이라도 마다할 형편이 못 된다. 미래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미래산업은 목표의 가치를 두고 끊임없이 다듬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콘텐츠업계의 현실적인 가난(?)은 미래산업이라는 별칭을 우습게 만든다.

 콘텐츠업계의 가난은 흡사 소프트웨어산업이 걸어온 길과 같다. 소프트웨어산업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은 헐값 경쟁이었다. 정부가 앞장서 ‘저가입찰제’를 실시하면서 업계도 시장도 모두 아사상태다. 최근에는 심지어 10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입찰가격도 있었으니 할 말 다했다. 저가입찰제는 결국 품질의 저하를 가져오고 기업이미지를 훼손시킨다. 개발비 부족으로 또 경쟁력 없는 상품이 나오고 결국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산업은 황폐화된다.

 왜곡된 유통구조도 문제다. 대형 SI업체에 하청,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유통구조는 단계마다 중간 마진을 제하고 나면 실질적으로 맨 밑단의 개발업체들은 건질 게 없다. 산업 근간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죄의식 없는 불법복제도 성행하고 있다. ‘한국에서 소프트웨어사업을 하면 바보’라는 자조섞인 푸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콘텐츠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소비자들은 콘텐츠 상품을 사용하면서도 그 가치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모든 콘텐츠개발업체 위에 군림하려는 거대 유통업체들의 그릇된 관행이다. 장사는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반드시 정도가 있다.

 최근 월 1억원에 몰린 스포츠신문사들의 행렬은 인터넷 포털업계의 ‘콘텐츠가치 무감각증’을 대변해 준다. 사실 주요 포털들이 콘텐츠의 가격을 조금씩만 올렸더라면 파란닷컴의 ‘파란’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헐값’판매에 생존을 위협당하는 콘텐츠제공업체들이 있는 한 스포츠지들의 반란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상품에 대한 가치 인정은 개발자의 자존심도 포함하고 있다.

 무선콘텐츠 역시 마찬가지다. 이동통신사가 정한 주 콘텐츠제공자(MCP)를 통하거나 계열 콘텐츠업체를 거쳐야 하는 구조는 결국 이중·삼중의 고통을 개발업체에 전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도 유통단계를 줄이자고 직거래 판매를 도입하는 마당에 하물며 신경제라는 온라인마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콘텐츠업체를 ‘두번 죽이는 일’이다.

 결국 콘텐츠가 없으면 포털도 이통사도 수익이 줄어드는 ‘공멸의 길’을 가야 한다. 소프트웨어산업이 기력을 못 펴는 것처럼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못하는 길을 다 함께 걷고 있다.

 이경우기자@전자신문, kw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