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정책의 화두에 변화가 일어났다. 19일 방송회관에서 열린 ‘방송채널정책 운용방안 수립을 위한 공청회’에서 제시된 정부의 정책 목표에 지역방송 육성과 로컬리즘(localism:지역성) 구현이 포함됐다. 채널 운용과 관련한 것으로 시청권 보호와 공익성 확보, 매체간 균형발전을 위한 공정경쟁 구도 확립 등 다른 두 가지 목표도 함께 제시됐지만, 이처럼 3대 목표에 지역방송이 포함된 것은 전례가 없던 일.
이날의 주요 관심 사항은 지역방송의 반대로 재송신이 금지된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의 지상파 재송신 허용을 비롯해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지역방송 채널에 대한 의무재송신, 지역민방 중 자체편성 50% 이상인 방송의 역외 재송신 허용 등 세가지였다.
첫째는 스카이라이프가 권역별 지상파TV를 송수신할 수 있는 수신제한시스템(CAS)을 개발함에 따라 정책변경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현재 위성방송은 지상파TV 3사의 네 채널 중에서 KBS1 채널만 내보낸 탓에 약 120만 가구가 수신중인 가입자수를 좀처럼 크게 늘릴 수 없었다. 시청자 입장에서 MBC·SBS와 지역민방 채널을 볼 수 없는 위성방송 가입의 필요성이 낮았던 것.
11명의 토론자들은 찬성과 유보 등 두 편으로 엇갈렸다. 찬성 측은 시청자의 ‘볼 권리’와 다양한 선택으로 인한 혜택 제고를 그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유보 측은 지역 시청자는 지역방송이 전하는 지역 뉴스, 오락 프로그램을 원하므로 이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이들은 스카이라이프가 지역방송 시청자의 시청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종전처럼 자의적으로 법규를 위반할 경우 실효있는 조치가 가능하도록 안전장치를 둘 것을 제안했다.
둘째는 전국적으로 약 1200만 가구가 수신하는 케이블TV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지역방송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였다. 일부 지역의 SO는 채널을 수시로 바꾸기도 했고, 심지어 지역방송을 중단한 채 네트워크 방송을 내보내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의무재송신을 고려하게 됐다.
셋째는 지역민방 중에서 편성과 제작 능력이 높은 방송에 한해 역외 재송신을 허용할 필요가 있는가였다. 정책 방안에서 제시된 자체 편성비율 50% 이상, 직접제작 프로그램 편성비율이 20% 이상인 지역방송으로 경인방송(iTV)이 해당되는 점에서 현재로서 이는 특정 방송사와 관련된 정책이다.
토론자 중에서 찬성 측은 시청자 선택권의 확대를 들었고, 유보측은 권역 파괴에 따른 지역방송의 정체성 약화를 제기했다. 또한 SBS가 지역민방과의 프로그램 전송 계약을 파기할 경우의 부작용을 지적했지만 이에 대해서는 해당 방송사는 법안을 통해 대상에서 제외했으므로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반론을 제시했다.
이번 공청회에서 논의된 방송채널정책에서 지역방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또 정책에 반영된 배경은 무엇인가. 먼저 현 정부의 출범이후 추진되고 있는 지방분권 정책을 비롯해 지역균형발전 정책과 행정수도 이전 정책 등에서 보듯이 지역에 대한 정부의 시각이 서서히 변화했고, 이제 방송정책에서도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위성방송과 민영방송의 지역방송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 조금씩 교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위성방송이 재송신을 추진하면서 지역방송을 도외시했고, 서울 소재 민영방송이 지역민방과 배타적이고 종속적 관계를 형성한다는 우려가 팽배했듯이 지역방송은 소외되고 무시돼 왔지만 이제는 그러한 자세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끝으로 방송이 지역에 기반해 기능하고, 지역방송은 가장 기본적인 방송 활동 단위라는 점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방송법은 ‘방송이 지역사회의 필요와 이익에 부응한다’는 점을 강조했고, 방송에 대한 규제와 지원의 근거로 삼았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방송법은 지역에 대한 규정이 부족했다. 이제 지역방송의 필요성과 발전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만큼 방송위원회의 지역방송 정책이 구체화돼야 할 것이다.
방송 환경은 지난 10년간 지역민방의 출범을 비롯해 케이블TV의 실시, 위성방송의 등장에서 보듯이 급변했다. 여기에 조만간 실시될 방송의 디지털화, 그리고 위성 DMB와 지상파 DMB의 가세는 방송 채널의 무한 경쟁시대를 열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처럼 변화무쌍한 가운데 시청자의 요구와 이익을 충족시킨다는 방송의 본질은 변화하지 않는다. 따라서 방송위원회의 정책은 지역시청자와 밀착된 지역방송의 기능과 역량을 제고시키는데 우선돼야 한다.
<이진로 영산대학교 매스컴학부 교수 leejr@ysu.ac.kr>